[맞짱 토론] 대기업 오너 겨냥한 '표적입법'…형량 정하는 건 사법부 고유영역
횡령·배임죄를 저지른 대기업 총수가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받을 수 없도록 하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개정안’이 지난 16일 민현주 새누리당 의원에 의해 대표발의됐다. 이 개정안은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관련 첫 법안이다.

개정안은 현행 횡령·배임에 따른 재산이득액 구간을 세분화하고 형량을 두 배 이상 올렸다. 횡령·배임 규모가 5억원을 넘으면 최소 7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법안이 원안대로 개정되면 법원이 정상을 참작해 주더라도 반드시 실형을 받게 된다.

법률 개정안의 취지는 분명해 보인다. 법치주의 정착과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재벌 범죄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관행 아닌 관행을 이번 기회에 발본색원하겠다는 결의가 읽힌다.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이어서 시퍼런 서슬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명분에 함몰된 쾌도난마’에는 늘 복병이 숨어 있다. 과유불급이 그것이다. 개정안에는 치명적 인식오류가 내재돼 있다. 깊이 성찰하지 않으면 큰 화를 자초할 수 있다.

정상 참작해 형량 줄인다고 특혜로 볼 근거 없어

[맞짱 토론] 대기업 오너 겨냥한 '표적입법'…형량 정하는 건 사법부 고유영역
먼저 형량 강화가 ‘경제민주화인가’하는 의문이 든다. 헌법 제119조를 냉정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1항은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경제의 기본질서로 한다는 것이다. 2항은 ‘필요한 경우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되,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로 요약된다. 전형적인 ‘원칙과 보칙’의 관계다. 따라서 1항을 뒤로 미루고 2항만을 앞세워 ‘경제민주화’로 네이밍(naming)하는 것은 대단히 작위적이다.

현재 경제민주화 논란은 정부가 나서서 약자와 강자를 구분해 강자에서 약자로 ‘사회적 이전’을 꾀하는 것으로 변질됐다. 경제민주화가 재벌을 옥죄는 것으로 여겨지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경제민주화는 시대정신일 수도, 경제의 효율과 형평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요술방망이’일 수도 없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이룬 경제적 번영도 ‘경제의 자유주의와 정치의 민주주의가 간섭 없이 공진화(共進化)’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발전의 토대가 됐기 때문이다. 정치와 경제를 섞는 경제민주화는 공진화라는 수레바퀴에 모래를 뿌리는 격이다.

입법부가 양형기준을 법률로 정하는 것은 3권 분립의 기본정신에 위배된다. 양형기준은 범죄유형, 가중·감경 요소, 범행동기 등을 감안해 사법부가 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양형기준을 따르되 정상을 참작해 형량을 줄여주는 것도 사법부 고유의 판단영역에 속한다.

형량 감경요소에 의거해 횡령·배임죄를 저지른 기업인들이 집행유예를 선고받는다 하더라도 이를 특혜로 볼 이유는 없다. 집행유예 남용을 견제하는 것과 법으로 집행유예 자체를 못하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현장지식’에 밝은 법조인의 판단을 법으로 막아서는 안된다.

‘법치주의(rule of law)’에서의 ‘법’과 ‘입법’은 다르다. 영국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는 법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우선 ‘자연질서법’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공정한 행동준칙’을 공식화한 것이다. 자생적 질서의 진화에 기여하기 때문에 ‘자유의 법’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조직법’은 입법자가 의도하는 구체적 목적, 즉 계획된 질서를 위해 설계된 법이다. 조직법이 남용되면 개인의 자유는 큰 위협에 처하게 된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내놓은 특가법 개정안은 입법기관의 ‘처분적 조치’에 지나지 않는다. 설령 다수결로 국회를 통과한다 하더라도 개정안에서 말하는 법은 ‘법치’의 법일 수 없다. 개정안의 설계도는 ‘형량이 반으로 경감되더라도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저자거리에서 구매자가 값을 반으로 깎을 것을 대비해 물건 값을 미리 두 배로 올려 부르는 장사치에 다름 아니다. 법이 특정 계층을 겨냥해서는 안된다.

배임, 명확한 기준제시 어려워…韓·日만 형사사건으로 처리

더구나 배임은 횡령과 달리 명확한 판단 기준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다. 경영판단의 결과로 손해를 입힌 경우와 배임을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삼성의 창업자가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는데 결과가 안 좋았다면 배임이 될 수도 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손해액 5억원 이상인 경우에 적용되는 특가법 상의 배임사건과 손해액 5억원 미만인 형법상 배임사건, 그리고 전체 형사사건을 대상으로 1심에서의 무죄선고율을 비교해봤다. 2008년에 특가법상 배임의 무죄선고율은 19.4%에 이르고 있다. 형사일반 무죄선고율 1.5%의 13배나 된다. 배임을 민사가 아닌 형사사건으로 다루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재벌총수에 대한 처벌 강화는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형량은 부당이득의 크기에 앞서 ‘죄질’에 연계돼야 한다. 정치인은 각종 인·허가권과 규제권, 그리고 처분권을 행사한다. 권한을 행사해 사익(私益)을 추구하는 것만큼 나쁜 것은 없다. 정치권의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표적입법’이야말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다.

그리고 법치를 허무는 것은 정치권이다. 야권의 한 유력인사는 검찰의 소환에 응하지 않고 불체포 특권을 남용해 버티고 있다. ‘파이시티’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된 여권의 유력인사도 대선 경선을 위한 정치자금이라며 ‘알선수재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정치자금법’ 위반은 정치권의 비상탈출구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구속된 정치인들은 집행유예나 특별사면, 복권으로 다시 정치권으로 복귀하는 일이 적지 않다. 동화은행 사건과 관련해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인사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누구든 법 앞에 평등하다. 정치인도 기업인도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행태는 ‘정치인과 가난한 사람은 빼고’를 주장하는 격이다. 증오를 입법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적 이득을 위해 법을 포퓰리즘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영혼 없는 정치인들’이라고 부르면 지나친 비약일까.

조동근 <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

△서울대 건축공학 학사 및 경제학 석사 △미국 신시내티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 하이에크소사이어티회장 △한국재정정책학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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