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한라공조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여의도 증권가에 퍼지면서 국내 최대 `큰 손' 국민연금의 역할에 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공개매수에 응하는 것이 최대수익 확보로 국민의 재산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시각이 있는 반면에 기술력 있는 제조업체 지분을 국외 자본에 함부로 넘겨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크다.

한라공조 2대 주주(지분율 8.10%)로 이번 공개매수 성패의 키를 쥐고 있는 국민연금의 결정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민연금 불참 가능성 파다
`꽃놀이패'를 쥐고 있다는 세간의 분석과 달리 국민연금의 고민은 깊다.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비스티온이 제시한 2만8천500원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주당 3만5천원 이상을 바라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A자산운용의 한 임원은 "국민연금이 2차 공개매수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제시된 가격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거론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주 한라공조 주가는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줄곧 약세를 나타냈다.

특히 다른 자동차 부품주가 일제히 반등한 13일에도 장중 5% 이상 급락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아직 공식적으로 확정한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공개매수 시한인 이달 24일까지 충분히 검토하고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자동차 부품업체인 비스티온은 기관 투자가와 개인 소액 주주로부터 한라공조 주식을 사들여 지분율을 95%까지 끌어올린 다음 회사를 자진 상장폐지하겠다고 이달 5일 밝힌 바 있다.

공개매수는 기업의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가격을 공표하고서 주식시장 밖에서 불특정 다수의 주주로부터 주식을 사들이는 것을 말한다.

비스티온은 현재 한라공조의 지분 69.99%를 가진 최대주주로, 의사 결정의 효율성과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공개매수를 통한 상장폐지를 원한다고 설명했다.

최대주주가 95% 이상 지분을 보유하는 것은 한국거래소의 자진 상장폐지 기본 요건 중 하나다.

◇공개매수 가격 적정성 논란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국민연금이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 차익실현의 기회를 영영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주당 2만8천500원은 사상 최고가로 이번 공개매수가 실패하면 다시 도달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이 첫 번째 근거다.

B증권사 연구원은 "현재 영업상황을 고려해 밸류에이션(가치평가)을 하면 적정주가가 4만원까지 나오지만 이는 이상적인 가격일 뿐"이라며 "국민연금이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으면 2만원대 초반으로 떨어져 횡보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C증권사 연구원도 "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탓에 거래량이 적은 편이어서 주가가 오르기 어렵다.

주식시장 전망 자체가 나쁘기 때문에 2만8천500원은 불만족스러운 가격이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달 초 1만8천원대까지 내린 한라공조 주가는 공개매수 기대로 상승세를 탔다.

발표 당일인 이달 5일에는 전날 종가보다 12.6% 높은 2만8천100원에 시초가를 형성했다.

국민연금은 지금 한라공조 주식을 팔아도 큰 수익을 얻는다.

2009년 4월 초 처음 지분율 5%를 넘겼을 때 취득 단가는 8천457원에 불과했다.

올해 4월 중순에는 2만1천원대에서 지분 일부(110만여주)를 팔아 차익을 얻기도 했다.

이밖에 국민연금이 원하는 대로 바스티온이 가격을 높여 2차 공개매수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재무 상태가 그렇게 탄탄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스티온은 잔여 지분을 사들이기 위해 KB국민은행으로부터 1년 만기로 9천150억원을 차입했다.

이번 공개매수에 드는 돈은 최대 9천142억원으로, 주당 매입가를 높이기 위해서는 추가 차입이 불가피하다.

D자산운용 고위 관계자는 "종합적으로 생각했을 때 국민연금이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국부 유출 우려도 나와
매입가격이 충분한지 여부와 관계없이 공개매수 자체에 반대하는 견해도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한라공조 대전·평택지회는 11일 국민연금 대전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연금은 투자 수익률보다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공개매수에 응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한라공조 노조 관계자는 "비스티온의 자진 상장폐지 취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상폐 후에 노골적으로 이익을 뽑아가더라도 견제할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비스티온이 공개매수를 위한 차입금을 한라공조에 전가하고, 기존 이익 잉여금을 배당 형태로 빼돌릴 수 있다고 걱정했다.

한라공조는 올해 1분기 말 기준으로 1조1천634억원 규모의 이익 잉여금을 보유했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 반응은 차가웠다.

A자산운용 임원은 "비스티온이 이미 70%에 육박하는 지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원하면 한라공조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

국부 유출 우려는 자본시장의 논리와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국민들로부터 받은 소중한 돈으로 최대한 수익을 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스티온의 한라공조 공개매수는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와는 별개로 국민연금의 역할에 관한 논란에 불을 지필 것으로 보인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국민연금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른 문제다.

기금운용위원회는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생각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han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