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조건대로 하면 1000억원 벌려다가 미분양 때문에 5000억원을 손해 볼 수 있어요. 이런 위험한 공사를 누가 맡겠어요.”(D건설 관계자)

공사비만 1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재건축예정 단지인 서울 고덕주공2단지의 시공사 선정 입찰이 무산됐다. 대형 건설사들이 일제히 두 손을 든 탓이다. 부동산시장의 급격한 침체로 서울 강남권 대형 재건축 시공권조차 외면받는 상황으로 급변했다.

◆1조원 공사입찰 왜 무산됐나

고덕주공2단지 재건축 사업은 20만9306㎡ 부지에 아파트 2600가구를 허물고 지상 35층 46개동, 4103가구를 신축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공사비만도 1조원에 달하는 매머드급 단지다.

지난 5월 시공사 현장설명회에서 현대건설 대림산업 포스코건설 삼성물산 GS건설 현대산업개발 등 메이저 건설사 11곳이 몰려들어 뜨거운 수주전을 예고했다. 하지만 13일 입찰제안서 마지막날엔 단 한 곳의 건설사도 나타나지 않았다. 수익은커녕 수천억원의 손해를 뒤집어쓸 수도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조합이 예시한 조건은 일반분양가를 3.3㎡당 2000만~2300만원(조합원 분양가 2000만원 초반)에 책정하고 무상지분율(추가분담금 등을 내지 않고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면적)은 140%다. 비슷한 가격으로 상반기 분양한 서울 왕십리·아현뉴타운 등이 사실상 실패한 것을 감안하면 비현실적인 조건이라는 게 건설업계의 시각이다. 게다가 인접한 위례신도시와 경기 하남의 보금자리지구에서는 하반기 3.3㎥당 1000만원 안팎에 분양되는 것도 부담이다. 미분양이 발생하면 공사비로 미분양 아파트를 모두 떠안아야 한다. 제때 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데 따른 금융비는 물론 미분양을 깎아서 팔 경우 미분양 할인금액도 건설사의 손실이다.

◆향후 시공사 재선정도 불투명

고덕2단지 재건축조합은 앞으로 한 차례 더 입찰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마저 무산되면 수의계약으로 전환할 수 있다. 그러나 수의계약 전망도 밝지 않다. H건설 관계자는 “조합원들이 원하는 무상지분율을 맞추려면 일반분양의 분양가격을 올려야 하고 이는 미분양으로 연결될 공산이 클 뿐 아니라, 공공관리제 도입으로 사업설계나 공사비 인상도 불가능해져 운신의 폭이 좁다”고 말했다. 공공관리제가 도입되면서 과거처럼 입찰 때 조합원 입맛에 맞춰 무리한 약속을 내세웠다간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변우택 고덕주공2단지 조합장도 “완전 도급제로 공사를 한다면 사업에 나설 건설사들이 있을 것”이라며 “지분제를 원하는 조합원들을 설득하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앞으로 서울에서는 서초동 우성3차, 공릉동 태릉현대아파트 등이 공공관리제로 시공사를 선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고덕주공2단지의 시공사 선정 무산이 이들 단지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김진수/이현일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