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통령은 취임 시 헌법 제69조에 의거해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국리민복을 증진시키는 것이며 그 핵심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실현하는 것이다.

국가 보위는 적의 침략이라는 외환(外患)과 내부적 근심인 내우(內憂)를 효과적으로 막아야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작금의 대한민국은 북한의 도발 위협이라는 외환과 대한민국의 붕괴를 획책하는 집단에 의한 내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내부적 위협은 각 정당의 공약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올해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당들은 표 계산에만 바쁜 나머지 나라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이념 지평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일부 세력의 포퓰리즘적 목소리에 눌려 대부분의 정당이 상대적으로 좌경화하는 현상을 보이며 대한민국의 존립을 어지럽히는 언행과 공약들을 남발하고 있다. 외침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데 필수적인 군사 시설의 건설을 반대하며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국군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것이나, 유권자를 기만하는 정치적 포퓰리즘 수준을 넘어 나라 살림을 결딴낼 내용을 담은 복지 공약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런 언행이나 공약들도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다수 국민의 지지를 얻으면 정책으로 가시화될 수 있는 것인가? 헌법적 가치에 어긋나는 가치와 이념도 다수 국민이 동의하면 헌법을 개정하지 않고도 받아들여야 하는가? 나라가 해체될 지경으로 몰아가는 공약에 다수 국민이 동의한다면 속수무책으로 그렇게 방치해야 하는가? 민주주의라고 하더라도 구성원들의 찬반 여부에 맡길 수 없는 분야가 국가안보에 관한 것이다. 나라를 지킬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거에서의 투표나 설문으로 국민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대의 민주주의에서 정당은 추구하는 가치와 이념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정강과 강령을 바탕으로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 집권함으로써 이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정치 집단이다. 선거 운동은 그런 가치와 이념에 근거해 공약을 제시,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활동이다. 그러나 그런 가치와 이념, 그리고 공약은 헌법적 가치 내에서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제 한국의 정당들은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지 점검받아야 한다. 문제가 불거질 때 일시적으로 논란이 됐다가 사그라질 수 있는 그런 사안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헌법적 가치에 위배되는 가치를 내거는 정당이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백주에 활개치고 다니는 일을 더 이상 허용해서는 안 된다. 내우외환을 초래하는 정당은 더 이상 대한민국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의지를 담은 정강과 강령을 천명하는 정당마저 득표에만 관심을 둔 나머지 정치 공학에만 몰두한다면 이는 좌경 세력에게 더 넓은 정치 영역을 할애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정당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청결한 이념을 확고히 하고 단순·정직하게 이를 실천해야 한다.

2040세대가 희망을 잃고 좌경 세력에 동조하고 있다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선거 판세를 심각하게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먹고 사는 삶의 이치를 잘 몰라 이른바 진보라는 이름에 현혹되고 있는 점도 있지만, 그 어느 세대보다도 성장의 과실을 만끽하고 있는 그들이 지금의 물질적 풍요를 포기하면서까지 좌경 세력을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각 정당의 정강과 강령, 그리고 공약을 검토해 헌법적 가치에 위배된다고 판단하면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요청해야 한다. 쓸데없이 자유시장에서 나온 결과와 기업 활동에 무리하게 간섭할 것이 아니라 나라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것이 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취임할 때 선서에서 다짐한 것을 실천하는 일이자 대한민국을 지키고 번영을 약속하는 길이다.

김영용 < 전남대 경제학 교수 yykim@chonna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