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저축은행 사태 등 수차례 혹독한 시련을 겪었지만 이렇다 할 교훈을 남기지 못했어요. 종합백서조차 없습니다. 국내 금융시장 발전을 위해 제도개혁 문제에 대해 정리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지난 20여년간 금융제도 연구에 매달려온 남주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52·사진)가 《금융위기와 한국의 금융제도 개혁》이란 책을 펴냈다. 김정렬 한성대 교수와 이규복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도 함께 참여했다. 오정근 한국국제금융학회장(고려대 교수)은 “외환위기 뒤에 관련 서적이 일부 나오긴 했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에서 금융위기와 제도적 문제를 심층 분석한 책으로는 처음이라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남 교수는 “세계 주요 금융위기를 살펴보면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있어 대비만 잘하면 예방하고 충격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9년 정부의 한국은행법 개정 태스크포스(TF)팀 민간위원으로 활동할 때 당연히 추진될 줄 알았던 개혁 입법들이 좌초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국내 금융개혁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은법이나 금융감독 체계를 개혁하려고 노력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지시한 일인데도 말이죠.”

그는 “난마처럼 얽힌 이해관계의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며 실패 원인의 상당 부분을 관료들과 감독당국, 금융회사의 이기심과 저항 때문인 것으로 진단했다. 감독 대상인 은행 경영진이나 개혁 대상인 금융당국 및 감독기관 관계자가 참여하는 구조로는 애초부터 한계를 안고 있었다는 얘기다.

남 교수가 책에서 제시하는 금융개혁의 핵심은 ‘금융위기 재발방지’와 ‘금융약자 보호’다. 그는 “이들은 제도 개혁의 목적이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따뜻한 자본주의’를 실현하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며 “이를 위해 ‘거시 건전성’ 감독과 금융소비자 보호에 대한 감독 강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위기는 구조적이고 전체적인 것이어서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거시감독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령 은행마다 부동산대출 규모를 키워도 개별 은행 감독(미시건전성)에는 문제가 없지만 모든 금융회사가 같은 추세로 갈 때 버블이 생기는데, 지금까지는 시장 전체를 들여다보는 감독 시스템이 약했다는 것이다.

그는 전경련 부설 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 등 10여년의 연구원 생활을 거쳐 2000년 서강대로 옮겨 경제대학원 부원장 등을 지냈다.

홍성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