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이 80억달러(약 9조4000억원)에 개발(수주)키로 한 ‘이라크 신도시 건설사업’에 대한 정식계약이 완료되고 첫 삽을 떴다. 단일기업이 10만가구 규모의 주거단지와 부대시설로 이뤄진 신도시를 단독으로 총괄 개발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어서 국내외 건설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금까지 건설업체들은 일부 복합주거단지를 총괄 개발하거나 단순 시공만을 맡아왔다.

한화는 지난 30일(현지시간) 이라크 바그다드 총리 공관에서 발주처인 이라크 투자위원회와 ‘비스마야 뉴시티 프로젝트’ 계약식을 갖고 비스마야 현지에서 기공식을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김승연 한화 회장과 한만희 국토해양부 제1차관, 김현명 주이라크 한국대사를 비롯해 말리키 이라크 총리, 알 아라지 국가투자위원장, 알 데라지 건설주택부 장관 등 양국 고위급 인사 500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계약식과 기공식은 현지 방송으로 생중계될 정도로 이라크에서는 비중이 높은 사업이었다.

김 회장은 계약식에서 “비스마야 신도시가 이라크 국민들에게 희망의 보금자리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며 “앞으로도 한화와 이라크가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해서 따뜻한 동반자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라크에 분당급 신도시 건설

이번 프로젝트는 이라크 수도인 바그다드에서 동남쪽으로 10㎞ 떨어진 비스마야 지역에 1830만㎡(약 550만평) 규모의 경기 분당급 신도시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한화는 향후 7년간 도로와 상·하수관로 등 기반시설을 포함, 10만가구의 주택을 건설한다. 하루 평균 2만6000명의 인력이 투입돼 6400t의 콘크리트가 사용되는 대공사다.

주택은 국민·보급형 아파트로 크기(공급면적 기준)는 100㎡형, 120㎡형, 140㎡형 등으로 구성된다. 실내의 경우 이슬람 생활문화를 반영, 공용공간과 개인공간을 분리한 ‘전통형’과 공용공간의 효율성을 높인 ‘모던형’ 등 6개 타입으로 설계된다.

한화건설은 10만가구 주택건설과 단지조성 공사를 동시에 진행하기 위해 PC(precast concrete) 공법을 적용할 방침이다. 기둥과 보, 벽 등 건물의 주요 부재를 현지 공장에서 미리 제작해 설치하는 방식이다. 60일 만에 4000가구 규모의 아파트 건설이 가능하기 때문에 공사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게 한화건설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한화건설은 현지에 세계 최대 규모의 PC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1700여명이 투입될 PC공장에서는 매일 80가구, 연간 2만여가구를 건설할 수 있는 슬래브와 벽체를 생산한다.

한화는 이라크 재건사업의 첫 번째 계약자로 앞으로 발주될 100만가구 주택건설 사업과 철도·도로 등 인프라 시설, 발전소와 석유화학공장 등 플랜트 공사수주에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됐다는 평가다.

○‘총괄 개발 수주’여서 수익성 양호

비스마야 신도시 사업의 가장 큰 특징은 도시설계부터 자재조달, 시공까지의 모든 건설공정을 한 묶음으로 수주한 ‘디자인 빌드(Design Build)방식’이란 점이다. 도시개발 과정 전체를 한화가 책임을 지는 것이다.

한화는 작년 합의각서(MOA) 체결 이후부터 원가에 맞는 설계검증을 계속해왔다. 시공비도 대규모 공사물량이란 점을 활용해 낮춰나갈 방침이다. 예컨대 10만가구분의 대규모 주택건설 자재구매를 강조할 경우 매입단가를 상당부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주요 부자재들을 규격화, 공장에서 제작하는 PC공법도 원가절감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이라크 주택은 난방과 도배 등이 불필요하고, 벽체와 페인트, 조명, 급·배수시설 등 기본설비만 갖추면 된다는 점도 원가절감요인이다. 주택형태가 단순해서 한국보다 시공이 쉽다는 것도 장점이다.

사업조건도 한화 측에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이라크 정부가 분양 등을 통해 예산을 확보한데다 재무성 산하 3개 국영은행이 공사대금에 대한 지급보증을 서기로 했다. 이미 작년 말부터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10만가구의 청약을 받아 분양이 사실상 끝난 상태다.

총 공사금액은 77억5000만달러지만 물가상승을 반영한 증액(escalation) 조항이 포함돼 실제 수주액은 8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선수금으로 총 공사금의 25%(약 19억3700만달러)도 먼저 받는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치안 문제로 발생하는 보험료 등 보안문제만 해결된다면 사업 자체의 위험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업체 설계 ‘한국형 신도시 수출1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세계 인구는 2009년 68억명에서 2050년에는 92억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50년까지 인구 20만명 이상 신도시 1만3000개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화가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개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경우 한국 기업이 설계한 ‘한국형 신도시 수출’이 잇따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김태엽 해외건설협회 정보기획실장은 “짧은 기간에 도시화를 이룬 한국은 도시개발 속도나 공사 효율성 측면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며 “중동 등 신흥국들은 한국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서 중동에 한국형 신도시 수출이 수월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과의 해외 동반진출이라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한화의 신도시 건설 사업에는 100여개 국내 중소 하도급 업체와 1000여명에 달하는 협력사 직원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정부의 후원도 수주에 한몫

한화의 이번 이라크 신도시 개발사업 수주에는 정부의 후원도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권도엽 국토부 장관은 지난 3월 서울에서 열린 한·이라크 공동위원회에서 알 데라지 장관과 만나 신도시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부탁하는 등 우호적인 분위기 조성에 힘을 쏟았다. 한국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등 관계기관의 적극적 자문과 지원을 통해 계약서와 보증서 문안의 위험요인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이라크는 전후 복구를 위해 697억달러에 이르는 재건사업을 추진할 계획이어서 이번 한화의 신도시 건설사업 수주를 계기로 향후 재건사업에서 한국 기업들의 참여가 늘어날 것으로 국토부는 전망했다.

한 제1차관은 “한화의 10만가구 주택 건설사업 수주는 이라크 재건사업에서 한국이 첫 삽을 떴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도 한국 기업의 수주확대를 위해 정부 차원의 다양한 지원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