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한전이 또 자구노력 나선다는데…
한국전력이 자구노력 계획을 또 발표했다. ‘또’라는 표현이 늘 따라다닐 정도로 한전에 자구노력 계획 발표는 이제 습관이 됐다. 사장이 취임해 조직을 잘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거나, 전기요금을 올리기 전 분위기를 조성할 때 동원되는 설레발이다. 이번에는 전기요금 인상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다.

레퍼토리는 뻔하다. 초긴축 예산을 운영하고, 프로세스를 개선해 매년 조단위의 원가 절감 효과를 내겠다는 식이다. 구체적인 건 없다. 그저 자구노력을 하기로 했으니 전기요금 인상을 눈 감아달라는 것이다.

하기야 한전이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하겠다는데 사용자인 국민들이 나 몰라라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눈을 질끈 감아줬다. 그렇게 이뤄져 온 것이 그간의 전기료 인상이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을까. 전기료 인상만으로 끝이었다. 자구노력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도 들어본 적이 없다. 국감 때 국회의원들의 자료 요청으로 극히 일부 결과가 공개됐을 뿐, 한전 스스로 자구노력 결과를 공표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국감을 통해 공개된 것도 경영개선이 아니라 경영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내용 일색이다.

한전과 10개 자회사는 2008년 임금인상분 전액인 220억원을 반납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1조20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되던 시점이기도 했지만, 민간기업 출신의 사장이 새롭게 취임해 ‘위대한 기업’이라는 경영모토를 내세웠을 때다. 모두가 한전의 환골탈태를 기대했다. 이듬해에도 인건비를 동결한 데 이어 부장급 이상 간부직원 1300여명이 자구노력 차원에서 임금 2~3%를 반납한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말한 대로다.

한전의 이런 인건비 감축 노력이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기대와는 정반대였다. 한전의 1인당 평균급여는 오히려 2006년 5922만원에서 지난해 7353만원으로 올랐다. 4년 연속 수조원대의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이자만 매일 60억원이 나가는 빚더미 속에 앉아서도 경영합리화 노력은 전혀 없었다. 억대 연봉자만 2449명으로 전체 직원의 7%에 이르는 곳이 바로 한전과 자회사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직원 자녀들에게 부당하게 지급된 학자금만 따져도 1281억원이다. 줄줄 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신의 직장’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었겠는가.

인건비를 줄이겠다는 발표와 함께 긴축 예산과 프로세스 개선을 통해 원가를 크게 개선하겠다는 두루뭉술한 단골 목표도 빠지지 않았다. 이런 계획이 제대로 추진됐다면 지금처럼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은 나올 수 없다. 매년 수조원의 원가 절감효과가 나왔을 테니 말이다.

한전의 올 1분기 경영실적은 2조383억원의 적자로 나왔다. 하지만 발전자회사의 이익을 합친 연결 기준 영업적자는 1054억원에 불과하다. 한 달 평균 350억원의 적자에 불과하다. 이는 한전이 100% 지분을 갖고 있는 발전자회사들이 한전에 비싸게 전기를 팔아서 흑자를 내고 있고, 따라서 발전소 추가 건설자금도 넉넉히 갖고 있다는 뜻이다. 한전은 자구노력을 발표하면서 매년 1조2000억원 안팎의 자구노력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월평균 1000억원 규모다. 월 1000억원이면 현재 월 350억원의 적자쯤은 상쇄하고도 남는다. 그렇다면 그것부터 전기요금에 먼저 반영하는 것이 옳다. 한전은 자구노력이 구두선(口頭禪)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부터 증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남 탓할 필요가 없다. 전기요금 문제는 한전 스스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규모 영업손실은 전기요금 인상을 위한 비용 처리라는 의혹을 받는 한전이다. 문제의 당사자는 숫자 놀음에 말로만 자구노력을 하고, 국민과 기업에만 부담을 전가시킨다면 누가 승복하겠나. 초점을 흐릴 필요도 없다. 문제의 핵심은 한전의 적자다. 여기에 요금체계의 왜곡이라는 난제가 얽혀 있는 것이다. 반기업 정서에 편승해 대기업을 민심과 갈라치기하는 방식으로 산업용 전기요금만 대폭 올리려는 시도는 그야말로 치졸한 꼼수일 뿐이다.

전기료를 올리는 데도 절차가 있다. 한전의 검증된 자구노력이 우선이고, 전력요금 체계 개편이 두 번째다. 요금 인상은 그 다음이다. 무턱댄 요금 인상은 결과적으로 한전에도 독이 될 뿐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