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산 약속' 뭐기에…구당권파 버티나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을 처음 제기했던 이청호 진보당 부산 금정구 의원은 16일 한 방송에 출연, “이석기 비례대표 당선자(사진)가 사퇴하겠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한 그들(경기동부연합) 내부에서 해결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이 당선자는 지난 10년간 총선 출마자들을 내부에서 지원해왔다”고 말했다. 진보당 구당권파 핵심인 경기동부연합에서 이 당선자가 차지하는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하는 발언이다.

주사파로 불리는 NL(민족해방)계열인 구당권파는 이 의원의 얘기대로 지난 10여년간 합법 정당운동을 지향해 왔다. 2001년 충북 괴산군 군자산에 모여 ‘9월 테제(강령)’를 채택한 게 계기였다.

9월 테제는 ‘군자산 약속’으로도 불린다. 3년 내에 민족민주정당을 건설하고 10년 내에 자주적 민주정부 및 연방통일조국을 건설한다는 게 군자산 약속의 핵심이다. 군자산 약속의 각론을 보면 △통일전선운동의 꽃은 중간층과의 사업이며 △변혁의 주체는 중간층을 누가 ‘전취’하느냐에 달려 있고 △반미 투쟁은 이남 민중만의 과제가 아니라 전 민족적 과제이며 △민주노조 운동을 반미 자주화를 주선으로 하는 운동으로 발전시키자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 정당을 포괄하고 모든 지역에 조직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결의했다. 운동권 또는 지하조직에 머물지 않고 정당을 통해 정치권력 장악에 나서겠다는 출사표인 셈이다.

구당권파는 군자산 약속을 차근차근 실천해왔다. 이들은 대거 민주노동당에 입당, 사회주의 노선에 충실하자는 PD(민중 민주) 계열이 장악하고 있던 당 조직을 접수해 나갔다. 서울 용산 지구당에 자기편 당원 수백명을 위장 전입시켜 지구당을 접수해 나가는 식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위장전입, 당비 대납, 불법 지구당 창당 등의 사건들이 터졌다. 이들은 2004년 5월 민노당 전당대회에서 권영길 심상정 노회찬 등 범 PD계를 누르고 당권을 잡았다. NL계열 내부에서 경기동부연합, 울산·인천연합, 광주·전남연합 등이 주도권 다툼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당초 울산·인천연합이 우세했으나 2006년 1월 경기동부가 광주·전남연합과 손잡고 범 경기동부연합으로 재탄생하면서 당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때부터 민노당의 종북(從北)성향이 짙어졌다는 게 진보당 신주류의 주장이다.

2006년 10월 NL계열인 당 사무부총장과 중앙위원이 당원 명부를 북한에 넘긴 ‘일심회’ 사건이 터지면서 NL과 PD가 갈라섰다. 그러다가 ‘4·11 총선’을 앞두고 진보당으로 다시 합쳐 13명의 당선자(구당권파 6명)를 냈다.

10여년 공을 들인 결과 야권연대를 통한 공동정권 수립을 추진할 수 있는 바탕이 만들어졌다. 당 안팎의 경선 비례대표 사퇴 요구에 구당권파 당선자들이 버티는 이유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승리를 눈앞에 두고 밀리게 되면 구당권파가 10여년간 들인 공이 무너질 수 있다”며 “군자산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들은 절대 물러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들은 국회의원 신분으로 정부 곳곳의 핵심 정보들을 열람할 수 있게된다”며 “이런 합법적 신분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홍영식/허란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