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4월 외환은행 서울 을지로2가 본점 건물엔 아주 커다란 현수막이 내걸렸다. 윤용로 외환은행장이 고객들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이었다. 2월 중순까지만 하더라도 외환은행 본사 곳곳에는 론스타와 금융감독 당국을 성토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지만 윤 행장의 사진이 이를 대체했다. 외환은행 관계자들은 “토종 은행장의 얼굴을 내세워 론스타 색깔을 지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환은행은 지난 2월 새 주인을 찾았다. 본점 대각선 맞은편에 있는 하나금융이 론스타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 51.02%를 3조9157억원에 인수했고, 금융감독 당국에서 이를 승인했다.

1967년 외국환전문 국책은행으로 시작한 외환은행은 1970~1980년대 수출주도 성장 정책의 핵심 기능을 맡아 빠르게 성장했다. 1989년 민영화된 뒤 경쟁력 있는 상업은행이라는 평판을 들었지만, 외환위기 여파로 부실해졌다. 2003년 경영권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넘어갔다. 이때부터 약 9년간 외환은행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뜨거운 감자’였다. 은행 자체의 경쟁력보다는 매각 과정의 특혜시비 따위로 입길에 오르내리는 일이 더 많았다.

그간 외환은행을 사겠다는 곳이 여러 번 나타났지만 협상은 번번이 틀어졌다. 싱가포르 DBS그룹, 영국계 홍콩상하이은행(HSBC), 국민은행, 산업은행, 호주뉴질랜드은행(ANZ) 등 여러 인수후보들이 등장했다가 가격이 안 맞아서, 금융위기가 와서, 금융당국이 협조하지 않아서 등의 이유로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외환은행은 조금씩 흔들렸다. 외환시장에서의 점유율은 여전히 절반에 이르는 ‘최강자’ 지위를 누렸지만, 예금과 대출 등의 영역에선 시중은행들이 경쟁 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배당 이익과 매각 차익을 우선시했던 론스타는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이나 새로운 투자에는 무관심했다.

‘외환은행은 해외 네트워크가 강점’이라는 평이 무색하게 론스타가 미국 은행업 허가권을 반납한 일은 직원들의 자존심마저 상처나게 했다. 경영진과 금융감독 당국에 반발하는 직원들은 수시로 직무를 버리고 붉은조끼와 머리띠 차림으로 거리에 나섰다.


◆론스타 색깔 지우고 새출발

하지만 지난 2월17일 외환은행 노조가 하나금융의 인수에 동의하고 윤 행장이 2월22일 취임식을 한 뒤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수세적인 영업 스타일은 ‘공격 영업’ 모드로 바뀌었다. 윤 행장은 취임 후 곧바로 조직개편에 들어갔다. 본점 근무인력 비율이 너무 높다고 판단, 본점의 10%인 105명을 일선 영업점에 전진 배치했다. 종래의 조직체계를 흔들어 영업본부를 2개 신설하고 외국환은행으로서의 기능을 강화했다.

외환은행은 앞으로 5년간 독립법인으로 운영된 뒤 하나은행과 합병할 예정이다. 이 기간 경쟁력 있는 분야인 외환·무역금융에서의 선두를 유지하고, 영업력 강화에 주력해 그간 다소 허약해진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윤 행장의 생각이다.

공격적인 영업 전략은 윤 행장 취임 50일여일 만에 벌써 시장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 기간 외환은행은 2~3일마다 하나씩 새 상품이나 서비스를 선보였다. 시중은행들이 통상 한 달에 3~4개 상품을 새로 내놓는 것과 대조적이다.

3월13일부터 4월30일까지 판매한 특판예금은 1조9200억원이 몰렸고, ‘기업스마트론’으로 2조3000억원을 신규대출했다. 연 4.7~4.8% 수준의 경쟁력 있는 금리의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인 ‘안심전환형모기지론’은 한 달간 1조원 판매목표를 거의 다 채워가고 있다.

취약부문인 중소기업 영업도 강화할 예정이다. 외환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2010년 말 19조원에서 작년 말 17조6000억원으로 떨어졌다. 윤 행장은 “잃어버린 중소기업 고객들을 찾아오겠다”고 공언할 만큼 의지를 보이고 있다. 조만간 기업들이 몰려 있는 공단 등에 새 점포를 여러 개 개설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외환은행은 최근 1분기 실적에서 당기순이익이 3139억원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하이닉스 매각이익을 감안하더라도 높은 수준이다. 전년 동기(1986억원) 대비 58.1%, 전 분기(2069억원) 대비 51.7% 증가한 것이다. 2008년 이 은행의 당기순이익이 1년간 7826억원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하나금융 계열사와 시너지 기대

하나금융의 다른 계열사들과 시너지를 내기 위한 작업도 지속하고 있다. 외환은행은 자회사로 캐피털·선물·펀드서비스만 보유하고 있는 단촐한 구조다. 하나대투증권·하나HSBC생명·하나SK카드 등 하나금융 계열사들과 상품을 공동개발·교차판매하면 수익성을 강화하고 고객층 저변을 확대할 수 있다. 이미 하나대투증권의 ‘피가로’ 상품과 연계한 ‘YES증권점프예금’을 개설하는 등 관련 상품들이 하나 둘 나오고 있는 중이다.

해외 네트워크 강화에도 아낌없이 투자할 예정이다. 하나금융은 당초 미국 은행업 라이선스가 없는 외환은행에 교포은행인 새한은행을 인수해 ‘선물’로 줄 계획이었다. 그러나 중간에 가격·경영권에 대한 이견으로 협상이 깨졌다.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은 지금 새로 인수할 미국 교포은행을 물색 중이다.

동남아시아 등 다른 지역에서도 적당한 매물이 나오면 언제든지 인수ㆍ합병(M&A)을 하겠다는 적극적인 태도다. 윤 행장은 지난달 말 중국 톈진 점포를 찾아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중국 등 아시아에서 외환은행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을 고민하기도 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