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만 해도 대형 건설사 안부러웠습니다. 인천 경기도 시흥 등 수도권 서북지역 주택시장에서는 ‘풍림 아이원’이 최고의 아파트 브랜드였습니다. 자부심도 대단했죠.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 이후 직원들은 대부분 떠났고, 지금은 술자리에서 가끔 만나 옛날을 회상할 뿐입니다.”(전직 풍림산업 마케팅 팀장)

시공능력평가 30위인 풍림산업이 2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함에 따라 ‘중견 건설사들의 몰락’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풍림산업은 이날 만기가 도래한 기업어음(CP) 423억원을 결제하지 못해 서울중앙지법에 기업회생절차 개시 신청과 함께 재산보전 처분 및 포괄적 금지 명령을 요청했다. 법원은 서류심사를 거쳐 정리절차 개시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풍림산업에 이어 최근 3년간 수백억원대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W사, B사 등 수십년 역사를 가진 건설사들이 줄줄이 법정관리 문턱을 넘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워크아웃 상태에서 3~4년째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 침체에 따른 극심한 공사 수주 부진에 쌓이는 이자 부담 등으로 경영 악화가 심해지고 있다. 몇 개월씩 직원 월급이 밀리는 회사도 늘고 있다. 이에 앞서 2000년대 중반 이후 (주)현진 신성건설 신창건설 등도 부도를 냈다. 부동산 시장 여건을 간과한 주택용지 과다 보유, 미분양 증가, 금융비용 급증 등이 원인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견 건설사들의 경영 악화는 빠르게 진행됐다. 당시 주택사업 비중이 80%에 달한 풍림산업을 비롯해 동문건설 월드건설 동일토건 중앙건설 신도종합건설 우림건설 등 내로라하는 주택업체들이 일제히 워크아웃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주택경기 침체 장기화…'돈맥경화' 악화

주택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급격히 늘어난 미분양이 직접적인 도화선이었다. 주택개발을 위해 빌린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도 미분양이 쌓이면서 업체들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신용등급이 ‘C’ 이하로 미끄러졌고, 이로 인해 신규 수주도 ‘그림의 떡’이 돼 버렸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신규 공사 수주가 전무한 주택업체들도 수두룩하다. 직원들은 시나브로 줄어들고, 껍데기만 남은 회사들이 급증하고 있다.

발전 플랜트 토목 건축 등 사업 아이템이 다양한 대형 건설사와 달리 주택전문업체들은 부동산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 백기를 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체 사업비의 30~40%를 차지하는 땅값에 자금이 묶이는 것도 큰 문제다. 주택시장 침체기에는 숨통을 조르기 딱 좋은 구조다.

워크아웃 건설사 영업담당 임원은 “대형 건설사들은 플랜트 등 해외 사업이 호조를 이뤄 주택부문의 적자를 만회하고 있다”며 “주택업체들은 다른 수익원이 없고 택지비에 자금이 묶여 옴짝달짝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워크아웃 건설사 관계자는 “자산 매각 등 다양한 자구책을 펼쳤지만 건설경기 부진과 금융권 대출 규제 강화로 어려움이 크다”며 “경기 회복과 미분양 소진이 안 되면 중환자실 탈출이 쉽지 않다”고 답답해 했다.

한국주택협회 관계자는 “어두운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며 “작년 실적을 토대로 올 상반기 신용평가가 끝나면 많은 중견 건설사들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 상황에서는 실적 개선 기대를 해볼 수가 없어서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시공능력평가 100위권 건설사 가운데 워크아웃(법정관리 포함) 상태인 건설사는 22개인데, 여기에 들지 않은 중견 건설사들도 내부적으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진수/김보형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