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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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썰은 풀고, 쌩은 깐다. 뻥과 구라는 치기도 하고 까기도 하지만 대개는 치는 쪽이다.” 소설가 성석제가 《이야기 박물지》에서 풀어낸 거짓말에 대한 ‘구라’다. 그는 구라를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 또는 말을 그럴싸하게 잘 늘어놓는 사람을 통칭하는 말”이라고 정의했다.
구라는 속인다는 뜻의 일본말 ‘구라마스’에서 왔다는 게 정설이다. 일제 때 도박판에서 주로 쓰이다 널리 퍼졌다는 것이다. 혹자는 어둡다는 의미의 ‘구라이’를 어원이라고 본다. 일본에선 거짓말하는 것을 지저분하고 더럽다고 여겨 이렇게 불렀다는 주장이다. 반면 시인 우재욱은 구라는 에누리처럼 받침이 없어 일본말로 보이지만 순우리말이란 색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세상에 거짓말이 많아서인지 거짓을 뜻하는 비속어는 구라 외에도 수두룩하다. 공갈, 썰, 뻥, 노가리, 이빨, 쌩, 뼁끼, 후라이…. 반면 진실의 비속어는 없다. 진실을 비꼬거나 능멸하면 자신이 거짓 편에 선 느낌이 들기 때문인가 보다.
우선 공갈(恐喝)은 본래 협박을 뜻하는데, 6·25 전쟁 이후 남을 해코지하는 거짓이란 의미로 널리 쓰였다. 썰은 말(說) 또는 혀(舌)에서 나온 속어다. 뻥튀기에서 유래한 뻥은 거짓말보다는 허풍의 뉘앙스가 강하다. 노가리(명태 새끼)는 명태가 한번에 수많은 알을 낳듯이, 말이 많으면 진실성이 없음을 빗댄 것이다.
이빨과 쌩의 유래는 불분명하다. 거짓말을 할 때면 말이 많아져 이빨을 드러내는 모양이 연상된다. 쌩은 ‘바람이 세차게 스쳐 지나가는 소리 또는 모양’을 가리키는데 거짓말에 그런 느낌이 들긴 한다.
뼁끼와 후라이는 스포츠에서 나왔다. 배구 권투에서 속임 동작인 페인트(feint)가 한글표기상 칠하는 페인트(paint)와 같아 그 속칭인 뼁끼로 변형됐다. 후라이는 야구에서 플라이를 치면 좋은 줄 알았는데 아웃이 되니 속았다고 여긴 데서 유래했다. 후라이보이도 있었다.
흔히 입담 좋은 사람은 성(姓)에 구라를 붙여 부른다. 야구계엔 30년 해설 경력의 하구라(하일성)와 허구라(허구연)가 있다. 문단에선 황구라(황석영)에 이어 성석제 씨도 구라 반열에 올랐다는 평이다.
이런 구라들이야 나쁠 게 없지만 지난 주말 만우절을 즈음해 벌어진 ‘구라 공방’은 낯이 화끈거린다. 총리실 사찰문건의 80%가 노무현 정부 때 작성된 것이라고 청와대가 반박하자, KBS 새노조는 트위터에 “구라도 좀 격조있게 까야”라고 비난글을 올렸다. KBS의 아름다운 우리말 캠페인이 무색해진다. 모두 구라 같아서.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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