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지주가 국민연금에 사외이사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김승유 회장이 전광우 국민연금 이사장을 직접 만나 “주주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모범적 기업지배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의 이 같은 주장은 매우 갑작스런 것이다. 지난해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연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주장했을 때만 해도 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훼손해서는 안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던 김 회장이다. 그는 당시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포기할 필요는 없지만 전략적 투자자인 연금이 경영에 관여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주주가치를 너무 광범위하게 봐서는 안된다”고까지 말했다. 더욱이 투자 지분을 자유롭게 사고팔고 포트폴리오를 조정해야 하는 연기금이 투자기업의 이사회에 들어가면 발이 묶인다며 기금운용 차원의 걱정도 했던 그였다. 그랬던 김 회장이 이번에 자신의 말을 뒤집은 것이다.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는 필연적으로 관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사외이사 자리도 한두 번이야 보는 눈을 의식하겠지만, 결국은 정치권 인사 또는 전직 관료, 아니면 연금 주변에서 서성이는 폴리페서들에게 돌아갈 것이 뻔하다. 사외이사 제도는 자칫 겉돌기 마련이고 더구나 연금에 속한 사외이사는 단기 경영성과에만 집착할 수 밖에 없다. 리스크를 떠안으면서 하나은행의 주요 경영 의사결정을 독립적으로 담당할 역량이 있는 사람을 확보하기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부정적인 결과를 뻔히 알고 있는 김 회장이 그런 요청을 한 것은 외환은행 인수와 맞물린 논란을 잠재우고 싶었거나 혹시 날아올지 모르는 낙하산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으로밖에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금융이 자신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다른 상장사에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어떤 경우든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뒤에서 어떤 낙하산들이 날아다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