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면 `공인' 사생활 보도 가능

유명인의 사생활 보호 못지않게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유럽인권법원(ECHR)의 판결이 나왔다.

ECHR은 7일(현지시간) 유명 인사에 대한 보도와 관련한 두 건의 소송에서 미디어의 보도와 국민의 알 권리를 중시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날 ECHR이 다룬 소송의 하나는 모나코의 카롤린 공주가 독일 여성지 `프라우 임 슈피겔'을 상대로 사생활을 침해했다며 제기한 것이다.

`프라우 임 슈피겔'은 지난 2002년 카롤린 공주가 남편과 함께 스위스에서 스키 휴가를 즐기던 도중 산책하는 장면을 촬영해 게재하면서 별도 기사로 당시 카롤린 공주의 아버지인 레이니에 대공이 중병을 앓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에 대해 카롤린 공주 측은 자신의 동의 없이 사진이 촬영됐으며 사생활을 침해했다면서 독일 법원에 제소했다.

당시 독일 법원은 언론은 고(故) 레이니에 대공의 병환 중에 왕실 일가가 어찌 지내는지 보도할 권리를 갖고 있으며 모나코의 통치자인 대공의 자녀들이 어떻게 가족 간 연대의 의무들을 합법적인 사생활의 필요성과 조화시켰는지를 보도할 수 있다면서 원고 측 주장을 기각했다.

독일 법원은 또 "원고 측은 이 사진이 전반적으로 위압적 분위기에서 찍힌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를 뒷받침하거나 몰래 촬영됐는지를 입증할 어떤 증거도 내놓지 못했으며 이 사진은 공공장소에서 촬영된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ECHR은 "카롤린 공주와 남편이 모나코 공국을 어느 정도까지 공식 대표하느냐와는 상관없이 원고 측은 평범한 개인의 사생활이라고 주장할 수 없으며 공인으로 간주돼야 한다"면서 독일 법원의 판결이 정당하다고 밝혔다.

한편 ECHR은 이날 독일의 함부르크 법원이 지난 2005년 코카인 소지 혐의로 체포된 유명 TV 스타에 관해 보도하지 못하도록 명령한 것은 유럽인권헌장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므로 잘못된 것이라고 판결했다.

언론재벌 악셀 슈프링거 산하의 대중 일간지 `빌트'는 당시 이 유명 배우가 뮌헨 맥주축제 당시 코카인 소지 혐의로 공공장소에서 체포됐다는 정보를 입수해 보도했으나 법원의 후속 보도 중단 명령을 받았다.

독일 1심법원은 표현의 자유보다 사생활 보호가 우선이라는 견해를 내세웠으며 독일 연방법원도 이를 받아들였다.

법원은 당시 이 배우의 이름을 소송과정에서도 `X'라고 표기토록 해 독일 언론으로부터 비판받았다.

국내 법원 판결에 불복한 `빌트'는 ECHR에 소송을 제기했고, ECHR 재판부는 오랫동안 TV 드라마에서 영웅적인 활약을 하는 경찰 간부로 연기해 오기도 한 이 배우에 대한 보도 내용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못박았다.

ECHR은 `빌트'가 그 같은 정보를 독일 관리들로부터 제공받았으며 "이 신문이 `잘못된 믿음'에서 행동했음을 시사하는 어떤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독일과 영국 등 유럽 언론은 이번 판결이 사생활 보호 권리와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언론의 보도할 권리라는 까다로운 주제에서 보도의 권리 쪽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권리 중 어느 하나가 우위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며, 두 권리 간의 `균형이 유지'되는 등 사안마다 다른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ECHR은 독일 잡지들이 지난 2004년 모나코 비치 클럽에서 자녀들과 함께 쉬고 있는 카롤린 공주와 가족들을 몰래 촬영해 보도한 것과 관련해서는 사생활을 침해했다고 판결한 바 있다.

한편 ECHR은 유럽연합(EU)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47개 유럽 국가들이 가입한 유럽위원회(Council of Europe)라는 기구의 유럽인권협약에 근거해 설치된 '초국가적' 인권재판소로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다.

그러나 EU 27개 회원국도 모두 유럽위원회의 회원국인데다 인권 관련 사건은 유럽인권법원이 관할권을 가지며 EU 최고 사법기관인 유럽사법재판소(ECJ)도 유럽인권법원의 판례를 인용한다.

(브뤼셀연합뉴스) 최병국 특파원 choib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