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직장인들이 취직과 함께 떠났던 대학가로 되돌아가고 있다. 치솟는 물가와 부동산 임대료 탓에 직장 근처 보금자리를 정리하고 주거비가 싸고 생활비 부담이 적은 대학가 원룸촌으로 귀환하면서 ‘토킹바’ 등 이들을 겨냥한 새로운 업태도 생겨나고 있다.

서울 대학동(옛 신림9동)의 S공인중개사무소 정모씨는 “과거에는 취직하면 직장 근처 역세권에 몰렸지만 최근에는 여의도나 강남의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들이 원룸을 많이 찾고 있다”고 전했다.

◆집세, 생활비 부담적은 대학가 인기

서울 중구에서 직장을 다니는 강모씨(35)는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 근처 원룸으로 이사했다. 회사와 가까운 곳에 얻었던 서대문구의 원룸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0만원을 냈지만 새로 이사한 곳은 비슷한 크기의 방(23.14㎡)임에도 보증금 500만원에 40만원의 월세면 충분했다. 주차장 이용료도 월 20만원에서 10만원으로 줄어들어 매달 30만원을 아낄 수 있다. 1년이면 연봉의 10% 정도인 360만원이 절약된다.

대학가는 주거비뿐 아니라 생활 물가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졸업 후에도 안암동에서 2년 넘게 거주한 김모씨(28)는 “회사 근처에서 7000원 하는 설렁탕 한 그릇을 학교 앞에서는 5000원이면 먹을 수 있고, 조금 걸으면 학교 식당에서 2000원에 한끼를 해결할 수도 있다”며 “밥값이 싸지만 음식의 질은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세탁소 등 각종 서비스가격도 저렴하다. 서울 강남 등 도심에선 와이셔츠 한 벌을 세탁하고 다림질하는 데 2000~3000원이 들지만 안암동에서는 1500원이면 가능한 곳도 있다. 이외에도 대학가는 싱글족들이 생활하는데 최적의 여건을 갖추고 있다. 각종 배달음식점과 24시간 영업하는 만화방, PC방 등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놀이공간’도 풍부하다.

지난해 모교 근처인 서울 회기동에서 회사(H연구소)와 가까운 연희동으로 이사했던 최모씨(30)도 요즘 회기동으로 ‘귀향’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생활비도 문제지만 주변에 친구가 없어 낯설고 외롭다는 이유가 더 크게 작용했다.

◆외로운 싱글족이 찾는 ‘토킹바’ 성업

대학가에 머무는 직장인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겨냥해 특화된 술집과 음식점들이 성업 중이다.

2000년 초·중반 신림동 고시생들이 몰리면서 생겨난 ‘토킹바’에는 고시생들이 밀려나고 대학가로 돌아온 직장인들로 붐비고 있다. ‘토킹바’는 신촌이나 홍대 등에 밀집해 있는 카페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이곳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어 독신 직장인들에게 인기다.

서울 대학동에 있는 토킹바의 매니저 이모씨(27)는 “예전에는 고시생들이 대부분이었다는 데 요즘은 직장인들이 더 많다”며 “주말에는 새내기 직장인이 아직 졸업하지 않았거나 고시공부를 하는 친구들과 무리지어 오고, 평일에는 인근의 혼자오는 직장인이 절반을 차지한다”고 전했다.

막걸리집이 많았던 서울 안암동 고려대 인근 안암역 주변에 수년 전부터 들어선 각종 프랜차이즈 음식점과 술집에도 직장인 고객들이 늘고 있다. 대로 뒤편에는 토킹바가 몰려있는 블록도 생겼다. 서울 잠실동에 사는 임모씨(32)는 “결혼 전 혼자 살 때 친구들을 불러내기도 마뜩지 않을 때는 토킹바에서 혼자 술마시는 주말이 많았다”며 “요즘은 혼자 술 한잔하는 이들이 많아 어색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