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년 7월 한 은둔자가 보헤미아(현 체코의 서부)의 영산 리젠게비르게(큰 산)에 올랐다. 전설적인 낭만주의 풍경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1774~1840)였다.

외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제한하며 드레스덴 근교에서 은둔적 삶을 살아온 그가 오랜만에 나선 도보여행이었다. 길게 기른 머리와 다듬지 않은 턱수염을 한 꼴이 유인원을 방불케 했다. 40대 중반이었지만 이미 반백의 노인이나 다름없었다.

후트(목조의 산장)에서 하룻밤을 지새운 이 화가는 리젠게비르게가 숨을 토하는 모습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 자는 둥 마는 둥 하며 주머니 속 회중시계를 꺼냈다 넣었다를 반복했다. 오래 전부터 작심한 순례길인 만큼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됐다. 결국 화가는 조바심을 이기지 못하고 30분 일찍 오전 3시30분에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엘베강의 발원지인 리젠게비르게는 그 웅장한 산세와 험준한 지형으로 인해 중세까지만 해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오지 중의 오지였다. 이 산이 사람들의 손을 타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철광과 은광이 개발되면서부터였다. 이후 보헤미아와 실레지아가 서로 이권을 독점하기 위해 오랫동안 신경전을 벌였지만 여전히 일반의 관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곳을 성스러운 순례지로 만든 것은 자연에 신성이 내재해 있다고 믿었던 19세기 독일 낭만주의자들의 공로다.

때는 여름이었지만 고원의 새벽 공기는 은둔자 프리드리히의 외로운 가슴 속으로 얼음장 같은 비수가 되어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1시간여를 숨가쁘게 걷던 화가는 엘프팔바우데와 슈네그루벤바우데 중간 지점에서 발을 멈췄다. 리젠게비르게의 전체적인 자태를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곳이었다. 북구의 짧은 여름밤은 일찌감치 태양을 침실 밖으로 불러냈다. 밤의 커튼 속에 몸을 가렸던 대지의 속살이 벌써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위도가 높은 알프스 이북 지역은 여름이면 오후 10시 이후에 해가 지고 오전 4시면 해가 뜬다).

순간 화가의 입에서 탄성이 터진다. 고원이 저마다 모락모락 새하얀 김을 토하고 있었던 것이다. 새벽 안개였다. 저 멀리 자욱한 안개 사이로 리젠게비르게가 서서히 거대한 실루엣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과학의 힘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 정신의 총화였다. 자연의 위대한 정신을 처음 눈으로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화가는 무릎을 꿇고 자연에 깃든 위대한 정신에 경의를 표했다. 그는 곧 등짐에서 화필을 꺼내 그 신성한 순간을 마치 영적인 계시를 기록하듯 종이 위에 옮겼다.

프리드리히가 이 ‘신성한’ 스케치를 다시 꺼내든 것은 리젠게비르게를 찾은 지 10여년이 경과한 후였다. 그는 왜 10년이나 뜸을 들이다 그제야 이 영산을 그렸던 것일까. 사실 그에게 산의 겉모습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자연에는 신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 그는 웅대한 산악을 순례함으로써 신의 숨결을 직접 느끼고 자연에 내재한 위대하고 신성한 정신을 그리려 했던 것이지 찰나의 객관적 모습에 얽매였던 것은 아니다.

그가 직접 본 리젠게비르게와 그가 마음으로 본 리젠게비르게는 달랐다. 그는 먼저 자신이 바라본 대상을 일정 시간 묵상하면서 마음속으로 되새김질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미 있는 구성을 이뤄나갔다. 산의 본질을 보다 완전하게 묘사하기 위해 다른 산의 장점도 한데 결합했다. 그래서 그가 그린 리젠게비르게는 실제의 리젠게비르게와 달랐다. 그에게 스케치란 하나의 완성작의 디테일을 묘사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마음의 여과 과정을 거치는 프리드리히의 독특한 풍경화 제작 태도는 기묘하게도 동양의 화가들이 산수화를 그릴 때의 마음가짐과 통하는 것이어서 놀랍다. 동양의 산수화가들은 자신이 마주한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고 마음의 눈으로 바라본 심상(心象)을 화폭에 옮겼다. 이것을 외형을 사실대로 그리는 ‘실경(實景)’과 구분해 ‘의경(義景)’이라고 했는데 문인화가들이 꿈꾼 이상이었다.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 ‘박연폭포’가 실제의 박연폭포와 다른 것은 폭포의 겉모습을 앵무새처럼 모사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여과 과정을 통해 재구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의 진지한 탐구정신은 그렇게 해서 동양과 서양의 정신적 만남의 장을 일궜다. 그것은 낭만정신이 예술의 대지 위에 토해낸 신성한 기운이었다.

◆명화와 함께 듣는 명곡 -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중 '아침 분위기'

[그림 속의 선율] 고원이 토해낸 새하얀 김…굽이굽이 자연에 깃든 신의 숨결과 마주서다
대지가 무럭무럭 김을 토하는 아침의 상쾌한 분위기에 걸맞은 음악으로 어떤 곡을 꼽을 수 있을까. 바로 노르웨이의 국민주의 음악가 에드바르 그리그(1843~1907)의 페르귄트 모음곡 중 ‘아침 분위기’다.

이 곡은 문호 헨릭 입센이 자신의 희곡 ‘페르귄트’(1867)로 사용하기 위해 그리그에게 의뢰해 만든 작품이다. 페르귄트라는 몽상가가 고향을 떠나 자신의 야망을 펼치려 온갖 모험을 겪은 끝에 거부가 되지만 이내 몰락, 고향으로 돌아와 옛 애인 솔베이지의 위안을 받게 된다는 내용으로 전주곡 행진곡 무곡 등 모두 23곡으로 이뤄져 있다. 원래 피아노 2중주곡으로 작곡됐지만 오케스트라로 다시 편곡됐다. 그리그는 이 중 8곡을 선별해 제1, 제2 모음곡으로 엮었다.

‘아침 분위기’는 제1모음곡 중 첫 곡으로 새벽빛이 서서히 떠오르는 모로코의 해안 풍경을 서정적으로 묘사한 곡으로 ‘솔베이지의 노래’와 함께 ‘페르귄트’에서 가장 많이 연주된다. 플루트로 시작되는 목가적인 연주는 듣는 이들을 아름다운 마음의 풍경으로 안내하며 말할 수 없는 내면의 평화를 가져다준다.

▶ QR코드를 찍으면 명화와 명곡을 함께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 미술사학박사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