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기부 습관' 은 3대째 내려오는 가족 전통
연말이 되면 생각나는 소설이 있다. 영국의 자수성가형 소설가인 찰스 디킨스가 쓴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구두쇠를 상징하는 스크루지는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에서 유래한다. 디킨스는 인색하던 스크루지가 돌연 자선을 베풀며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부유한 계층부터 자선을 실천하면 그 효과가 동심원처럼 커져 따뜻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확산시켰다.

연말이 되면 누구나 한번쯤 한 해를 되돌아보며 ‘자선냄비’나 불우한 이웃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자선이나 기부,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며 도움을 주기 위해 나서는 행위는 일종의 ‘중독’이자 ‘습관’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나서기’의 대명사가 된 빌 게이츠는 부모로부터 나서기 중독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 윌리엄 게이츠가 쓴 《게이츠가 게이츠에게》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나서기’에 일종의 중독 증상을 보인다며 짐짓 놀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랬던 아이들이 지금은 나의 ‘나서기’ 습관을 꼭 빼닮은 것 같다.”

청년 변호사로 일하던 1950년대 윌리엄 게이츠는 YMCA위원회에 합류하면서 처음으로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됐다. 그는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를 위해 더 많이 ‘나서기’로, 더 많은 도움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윌리엄 게이츠는 대형 로펌의 회장으로 성공가도를 질주했는데 ‘나서기’ 또한 멈추지 않았다. 윌리엄 게이츠는 부시 대통령이 상속세 폐지를 주창하자 이를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대변인을 지냈다.

그런데 윌리엄 게이츠의 ‘나서기’는 그 아버지의 ‘나서기’에서 중독됐다고 한다. “아버지는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구든 주저없이 도움을 구하는 분이었다. 좋은 일에 쓸 공적 자금이 필요할 때면 아버지는 기꺼이 가가호호 문을 두드리며 몇 푼이라도 일조해주기를 청했던 것이다. 고향 마을에 새로 공원을 조성한 것도 아버지가 나서서 이룬 일이었다.”

게이츠 가의 ‘나서기’ 중독은 3대째 이어져오고 있는 ‘가족 전통’인 것이다. 빌 게이츠의 어머니인 메리도 남편에 뒤지지 않을 만큼 ‘나서기’를 좋아했다. 처음에 시작한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지도하거나, 자선단체인 ‘유나이티드웨이’ 자원봉사자로서 부모 중 한 사람이 없는 ‘한 부모 가정’을 방문해 돕는 일이었다.

메리는 오랜 세월 유나이티드웨이 자원봉사를 한 공로로 워싱턴 지역 유나이티드웨이의 첫 여성 책임자를 거쳐 미국 유나이티드웨이와 유나이티드 인터내셔널에서도 회장을 역임했다. 또 20년 동안 워싱턴대학의 운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아들 빌 게이츠는 매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저녁식사 자리에서 엄마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으며 자랐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네 용돈의 얼마를 구세군에 기부할 생각이니?” 어머니는 1994년 아들의 결혼식 전날 며느리 멜린다에게 “너희 두 사람이 이웃에 대해 특별한 책임감을 느낀다면 세상을 좀 더 살기 좋게 바꿀 수 있을 것이다”라는 편지를 썼다.

빌 게이츠가 2008년 7월 자신이 설립한 마이크로소프트의 회장직을 사임하고 자선사업가로 나선 것은 어머니의 편지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빌 게이츠의 왕성한 자선활동은 단지 돈이 많아서 하는 행위라기보다도 부모가 물려준 ‘위대한 유산’인 셈이다.

지난 한 해를 앞만 보고 질주했다면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어보며 어떻게 사는 게 진정한 인생인지 반추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최효찬 < 연세대 연구원·자녀경영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