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스티브 잡스 전기 없길래 당장 사놓았죠"
박종구 한국폴리텍대 이사장(53)과의 인터뷰는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8월 이사장에 선임됐을 때 대학 운영 계획을 들었던 ‘실무 인터뷰’ 이후 넉 달 만이다. 당시 인터뷰 말미에 그는 “다음에는 꼭 저녁식사를 하자”고 했다.

12월 초 서울 여의도 구마산에서 가진 박 이사장과의 ‘맛있는 만남’은 그래서 더 기다려진 자리였다. 하지만 기다림 탓이었을까, 이날 따라 업무가 겹치고 차까지 막히는 바람에 약속시간을 한참 넘겨서야 도착했다. “저녁 한번 하자고 했던 말을 빈 말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줘서 고맙습니다.” 박 이사장은 짜증은커녕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자의 손을 꼭 잡았다.

밥상에는 이미 숙주 가지 오이 시금치 등 각종 나물과 김치 등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이 집의 자랑거리인 숯불갈비도 ‘샤방’한 때깔을 뽐내고 있다.

“일단 한 잔 받으시죠.” 자리에 앉기 무섭게 소주 한 잔을 건넨다. 박 이사장의 주량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량을 묻자 “소주 두 병 정도 합니다”고 한다.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이자 “요즘엔 주량을 다 채우기도 전에 소폭(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으로 넘어가 정확하게 모르겠네요”라며 웃는다.

구마산과의 인연이 궁금했다. “고건 전 총리와 자주 왔어요. 국무조정실에 근무할 당시 국회가 열릴 때면 일이 끝난 뒤 저녁을 먹으로 오곤 했죠.”

"도서관에 스티브 잡스 전기 없길래 당장 사놓았죠"
그는 1993년부터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내다 1998년 공직에 몸담았다. 기획재정부 정부개혁실 공공관리단 단장으로 공기업 민영화 업무를 주도했다. 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에서는 경제조정관과 정책차장 등을 지내며 새만금 개발,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게임 규제 등 굵직한 사회 갈등 이슈들을 해결하는 임무를 맡았다. “교수는 그래도 숨쉴 수 있는 여유는 있는 것 같아요. 공무원은 매일 현안이 터지고 국민 전체를 위한 정책을 펴다 보니 어깨가 무겁죠. 하지만 그만큼 열정을 쏟을 수 있다는 점은 좋았어요.”

박 이사장은 ‘행정의 달인’으로 불리는 고 전 총리를 2003년 2월부터 1년3개월간 보좌했다. “교수가 되기 전, 그러니까 고 전 총리를 모시기 훨씬 전에 그분의 아들(고진 갤럭시아커뮤니케이션즈 사장)과 미국 시라큐스대에서 같이 공부한 인연이 있죠. 고 전 총리는 공직자의 귀감이 되는 분입니다. 술도 잘 하시고요.”

식었던 숯불갈비가 다시 데워져 나왔다. 모두 자연스럽게 한 점씩 입에 넣었다. 씹을 때마다 구수한 육즙과 달콤짭짜름한 양념이 어우러진 감칠맛이 배어 나온다. 다른 얘기로 화제가 옮겨가기 전에 재빨리 한 점을 더 집었다.

박 이사장은 “과학기술인재 10만명을 육성하자는 한국경제신문의 ‘스트롱코리아’ 캠페인에 공감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기술 분야를 담당하는 교육과학기술부 2차관(2008년 3월~2009년 1월)을 끝으로 공직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공계 기피 현상을 줄이려면 정부가 좀 더 파격적인 사기 진작책을 내놓아야 해요. 미국에서도 똑똑한 학생들이 월스트리트(금융계)나 워싱턴(정계)으로 가는 일은 많아요. 그런데도 미국이 과학기술 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정부가 변함없이 지원해주기 때문이죠. 병역 혜택이나 연금 제도 개선, 정년 보장 등 해줄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

소주가 한 순배 더 돌았다. 동행한 사진기자가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 체질’이라고 했더니 “한 잔 드시나 열 잔 드시나 똑같아서 좋으시겠다”며 한 잔을 더 권한다.

폴리텍대 이사장 취임 후 4개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물었다. “전국 11개 대학 34개 캠퍼스를 전부 돌았어요. 학생들도 만나고 시설 점검도 했죠. 화장실에 가서 따뜻한 물은 나오는지, 도서관에 트렌드에 맞는 책들은 구비돼 있는지도 봤어요. 얼마 전 세상을 뜬 스티브 잡스의 전기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사놓으라고 했죠.”

폴리텍대 얘기가 나오자 눈빛이 반짝이고 목소리도 두 배쯤 커졌다. 그는 “34개 캠퍼스를 앞으로 계속 돌아가며 들를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폴리텍대(2~3년제)는 1980년 세워진 창원기능대학이 시초다. 2006년 전국 18개 기능대를 통합, 현재의 이름으로 새출발했다. 대학별로 학장이 있고 이사장이 전체를 총괄한다. 박 이사장은 “연간 등록금이 240만원으로 전문대의 절반, 4년제 대학의 3분의 1 수준이고 기숙사비도 월 8만원”이라고 소개했다. 입학생의 48%가 2년제나 4년제 대학 졸업자라고 덧붙였다.

학교 자랑이 이어졌다. “학생들의 기술도 뛰어나지만 인성이 정말 좋아요. 졸업생들의 취업 유지율(1년 이상 취업을 유지하는 비율)이 77%로 국내 대학 중 최고 수준이죠. 4년제 대학들은 보통 50% 안팎에 불과해요. 로열티가 강하고 태도도 긍정적이어서 조직 생활을 잘 한다는 평가를 듣죠.”

교육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분야는 영어와 인문 교양 과목이라고 했다. “요즘은 기계나 공정 설명서가 다 영어로 돼 있지 않습니까. 설명서 정도는 읽을 수 있어야죠. 1주일에 2시간씩 하던 영어 수업을 4시간으로 늘렸습니다.”

인문학 철학 등 교양 강좌를 늘리기 위한 학제 개편도 연구 중이다. 인문학에 대해 말하다 얘기가 권주가로 흘렀다. 조조의 단가행(短歌行), 도연명의 만가시(挽歌詩) 등을 좋아하는 권주가로 꼽았다. “단가행 첫 구절은 ‘술을 마주했으니 노래하세(대주당가·對酒當歌) 사람의 삶이 얼마나 길던가(인생기하·人生幾何)’로 시작해요. 만가시는 ‘다만 한스러운 것은 세상에 있을 적에(但恨在世時·단한재세시) 술을 충분히 마시지 못한 것이라네(飮酒不得足·음주부득족)’로 마무리됩니다. 낭만이 있죠?”

얘기가 옆으로 새는 것 같아 화제를 다시 대학 쪽으로 돌렸다. 취업률이 높은 비결을 물었다. “산업현장을 캠퍼스로 쓰는 ‘팩토리러닝시스템’과 1200여명의 교수들이 1인당 10개 이상의 기업과 네트워크를 구성해 취업 지원은 물론 경영 컨설팅까지 해주는 ‘기업전담제’는 폴리텍대만 갖고 있는 독특한 시스템입니다. 공장에서 실제 쓰는 기계를 다 다뤄 보니까 취업 후 재교육 비용이 거의 들지 않죠.” 폴리텍대 34개 캠퍼스 중 남인천캠퍼스가 올해 취업률 96.4%를 달성한 것을 비롯해 7곳이 취업률 90% 이상을 기록했다. 전국 172개 전문대 취업률 순위에서 1위부터 12위까지 폴리텍대 캠퍼스들이 싹쓸이했다. 폴리텍대 전체 취업률 평균은 85.6%다.

박 이사장이 발로 뛰면서 현장을 챙긴 것도 한몫 했다. “매주 학장들이 참여하는 취업점검회의를 직접 주재합니다. 취업 문제는 학교와 학생 공동 책임이죠. 이제는 취업의 질(質)이 관건이라고 봅니다. 대기업 취업률이 20% 정도인데 더 높여야 합니다.”

◆ "인문학 교육 강화…이제는 취업의 질을 높여야죠"

취업률에 비해 홍보가 덜 돼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박 이사장은 “인지도가 낮은 게 약점”이라고 시인했다. 그는 “폴리텍대하면 취업이 강한 대학, 실습이 강한 대학이 떠오를 수 있도록 이미지 메이킹에 역점을 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한 시간 남짓 지나자 숯불갈비와 함께 구마산의 자랑거리인 추어탕이 상에 올라 왔다. “미꾸라지를 갈아 넣은 전통 마산 스타일입니다. 이 집 추어탕은 뒷맛이 깔끔한 게 특징이죠.”

구수한 추어탕을 안주 삼아 술이 몇 잔 더 돌았다. 소폭을 한 잔 하자고 하니 망설임없이 오케이다. 먼저 ‘제조권’을 가진 박 이사장이 맥주와 소주를 잔에 절반씩만 따라 섞었다. 그는 “소주든 소폭이든 먹기 편하게 반씩만 따라 마신다”고 했다.

순식간에 석 잔이 돌았다. 폭탄주까지 먹은 김에 망설였던 질문을 던졌다. “형님들은 자주 뵙나요?” 밝았던 표정이 순간 어두워진다. 살짝 당황스럽고 곤란한 눈치다. 박 이사장은 고(故)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자의 5남이다. 최근 계열분리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3남)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4남)의 동생이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형제들인데 당연히 뵙고 지내죠. 삼구 형님과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꼭 만나 점심을 먹습니다. 지난주에도 점심을 같이했어요.” 두 사람이 늘 만나는 곳은 광화문 인근 호남식 한정식집 예조(옛 장원)다.

“두 분이 대우건설 유동성 문제가 터졌을 때 생각이 좀 달랐던 것 같아요. 지금은 잘 지내고 계시고요. 형님들이니 두 분 다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패밀리 비즈니스’라 모범 답안만 내놓는 것은 아니에요. 하하. 이 얘기는 그만 하시죠.”

분위기가 어색해진 것 같아 화제를 바꿨다. 중국과 일본 역사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화색이 돌고 술김에도 눈빛이 밝아진다. 학부 때 역사를 공부한 박 이사장은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역사에 밝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물 평전에 강해 외부 초청이나 내부 강연에서 주제에 맞는 인물로 얘기를 풀어나가는 경우가 많다.

‘난세의 영웅’ 조조의 권주가를 논하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일본 전국시대 인물들로 대화가 옮겨졌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미화됐어요. 저는 대망이라는 책을 좋아하지 않아요. 셋 중에서 저는 도쿠가와와 닮은 것 같아요. 나머지 두 사람이 타고난 천재였다면 도쿠가와는 끝없이 반성하고 노력하는 인물이잖아요. 도요토미는….”

끝으로 폴리텍대 운영 계획을 물었다. “크로스오버(융합) 교육과정을 30개에서 100개로 늘리고 폴리텍대가 그린 나노 등 신성장동력 산업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허브 역할을 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그동안 이사장은 관리자 역할만 했지만 저는 현장을 발로 뛰며 이사장과 총장의 역할을 할 생각입니다.

"도서관에 스티브 잡스 전기 없길래 당장 사놓았죠"

◆ 박종구 이사장의 단골집 구마산 - 경상도 스타일의 담백한 추어탕·숯불갈비 '일품'

"도서관에 스티브 잡스 전기 없길래 당장 사놓았죠"
구마산(舊馬山)은 여의도에서 35년째 영업 중인 전통 있는 음식점이다. 지금은 롯데캐슬로 재건축한 옛 백조아파트 상가 2층에서 1976년 영업을 시작했고 2001년 미원빌딩 2층으로 옮겼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 마산 출신 신복순 할머니와 큰딸 하경옥 사장이 경상도 스타일의 담백한 추어탕을 선보이는 집이다. 주력 메뉴는 숯불갈비(3만원)와 추어탕(9000원)이지만 씹을 때마다 알싸한 즙이 터져나오는 미더덕찜(1만5000원)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세 가지 메뉴가 각각 한가락하기 때문에 ‘갈비 먹으러 구마산 가자’고 하면 ‘거기 추어탕집 아니었나?’ 하는 반응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숯불갈비는 17년 공력의 주방장이 숯불에 미리 구워 뜨겁게 달군 석쇠에 담겨 나온다. 1등급 한우 암소 갈비에 아이들도 쉽게 먹을 수 있는 달달한 양념을 더했다. ‘

추어탕은 삶은 미꾸라지를 갈아서 체에 한 번 거른 후 우거지와 된장으로 맛을 내는 마산식이다.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는 원주식이나 미꾸라지를 갈아서 쓰지만 들깨를 많이 넣어 구수한 남원식에 비해 국물이 가볍고 깔끔한 편이다. 일요일은 쉰다. (02)782-3269

강현우/이건호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