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재정동맹'에 힘실리는 유로존
유럽이 몹시 불안해 보인다. 세계 금융시장은 유럽 문제의 해결 가능성 여부를 둘러싸고 하루하루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기념비적인 마스트리흐트조약(유럽연합조약)이 합의된 지 20년이 되는 시점이다. 안정과 번영의 상징이었던 유럽은 이제 세계경제 위기의 진앙지로 평가 절하되고 있고, 반복되는 위기에도 유럽연합(EU)은 아직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여유롭게 보이던 유럽에 최근 들어 긴강감이 부쩍 높아가고, 통합에 대한 회의론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유럽의 통합 기운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적 경험에서 터득한 통합의 필요성이 엄존하는 한, 일정한 속도는 아닐지라도 통합의 폭과 수준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높아질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통합의 부작용이 부각됨으로써 통합의 장점이 묻히는 분위기가 우세해 보이지만, 유럽인들 사이에 유럽 통합만이 살길이라는 인식이 있는 한 유럽통합 체제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이 번영을 누리고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난 것이 유럽통합 덕분이라는 평가도 한몫할 것이다.

오히려 현재의 위기를 발판으로 유럽통합은 보다 더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통합 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9일 개최되는 브뤼셀의 유럽연합 정상회의가 주목받는다.

유럽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거론되는 다양한 시나리오 중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기존의 골간을 유지하면서 통합체제 운영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방식일 것이다. 기존의 통화동맹과 함께 ‘재정동맹’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현재의 통합체제 운영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해 보다 강화된 지역통합체로 나가고자 하는 목적에서 출발한다. 유럽화폐동맹에 가입한 17개국이 유로라는 동일 화폐를 사용하면서도 재정정책은 여전히 개별 국가의 권한으로 남겨놓은 ‘마스트리흐트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고 보다 심화된 통합질서로 리모델링해 보자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지난 5일 독일과 프랑스 정상이 유럽연합 정상회의에 앞서 합의한 내용은 바로 이를 반영한 것이고, 회원국들로부터 지지세를 확산시켜 나가고 있는 중이다.

양국이 합의한 재정 건전성 강화안의 핵심은 재정적자율을 국내총생산(GDP)의 3% 아래로 낮추자는 기존 합의를 구속력있게 실행해 나가자는 것이다. 재정 건전성을 유지해 유로화의 안정성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1997년 암스테르담에서 합의했던 내용은 1990년대 말과 최근의 세계 금융위기 및 각국의 국내 사정을 이유로 그간 실효성있게 지켜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독일과 프랑스마저도 최근 몇 년 동안 이 기준을 준수하지 못하고 있다. 2010년 말 기준으로 유로존 국가들 중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의 3% 밑으로 유지한 나라는 룩셈부르크(1.1%)와 핀란드(2.5%)뿐이다. 이번 합의는 위반국에 대한 제재를 자동화함으로써 협약의 강제성을 높이고, 이를 계기로 유럽통합의 수준을 한층 더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재정동맹은 조세정책 등 각국의 경제 주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이어서 단기간에 회원국 모두가 합의하는 결과를 도출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설령 정상들 간에는 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특정 회원국에서는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 험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로존을 안정시키고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럽연합 회원국의 이익을 강화할 것이라는 판단이 엄존하는 한 진전과 후퇴의 연속으로 진행돼 온 유럽 통합은 당면한 경제위기를 넘어 한 단계 더 진일보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김면회 < 한국외국어대 교수·국제정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