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FTA' 판사들, 방송에서까지 "나라 팔았다"
페이스북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글을 올려 ‘정치중립성’ 위반 논란을 촉발시켰던 현직 법관들이 2일 라디오방송에까지 출연해 “한·미 FTA는 나라를 판 것”이라고 주장,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사흘 전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까지 나서 “법관의 개인적인 행동과 모습은 국민의 사법부 전체에 대한 신뢰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자제를 권고했지만 튀는 법관들의 ‘항명’ 수위는 더욱 높아가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양승태 대법원장이 어떤 식으로든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관료들이 나라살림을 팔아먹은 이날을 잊지 않겠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던 최은배 인천지법 부장판사(45·사법연수원 22기)는 이날 CBS라디오에서 “정부 각 부처들은 4대강에 대해 설득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만 했다”며 현 정부를 비난한데 이어 “특히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는 주권침해 소지가 충분히 있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42·연수원 23기)도 이날 MBC라디오 방송에 나와 “ISD조항에 따라 대한민국 주권인 사법권을 대한민국 법원이 아닌 외국 중재기관에 넘기는 것은 주권을 판, 나라를 판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장판사는 2004년 서울남부지법에서 종교적 병역기피자에게 무죄를 선고해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법원 내 진보성향 법관들의 연구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소속이다.

법관들의 ‘반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1일에는 김하늘 인천지법 부장판사(43·연수원 22기)가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서 ‘한ㆍ미 FTA는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불평등 조약일 수 있으므로 사법부가 나서야 한다’며 100명 이상의 판사들이 동의하면 한ㆍ미 FTA를 법리적으로 분석할 태스크포스(TF) 구성을 대법원장에게 청원하겠다고 나섰다. 하루 만인 2일 170명이 넘는 판사들이 댓글로 동의를 표시했다.

줄을 잇는 댓글에 고무된 김 부장판사는 “내 제안에 동의한 판사들의 이름을 정리해 청원문을 작성하도록 하겠다”며 “대법원에 연락해 대법원장님을 만나뵐 수 있는 일정이 마련되는지 협의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양승태 대법원장은 ‘구두’ 경고장만 날리고 있다. 양 대법원장은 이날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사법부 주요 현안을 토의하기 위해 전국 고등법원장과 지방법원장 등 31명이 참석한 전국법원장회의에 참석, “선비는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다”는 옛 속담을 인용한 뒤 “법원과 법관이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다면 그 재판권능도 존립의 근거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전날에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판사들을 겨냥, “독특한 신념에 따른 소신을 법관의 양심으로 오인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연이틀 레드카드를 들이대며 정치성향이 짙은 법관들을 질타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대법원장의 영(令)이 전혀 서지 않는 양상이다. 법원 안팎에선 “현직 법관들이 자신들의 정치성향을 페이스북이나 법원 내부통신망 같은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 외부로 표출하고 있는 만큼 법관윤리강령 위반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