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파바로티' 포프의 '리골레토' 서울 무대
루마니아 외곽 비스트리차의 한 농가. 아버지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일을 하면 아들은 동물들과 함께 지는 해를 바라보며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여덟 살 때부터 성직자였던 삼촌을 따라 매주 교회에 나가 성가대에서 합창을 했다. 다른 남자애들과 다르게 여자 아이들 틈에서 소프라노 파트를 맡았다. 이 특별한 목소리는 순식간에 마을 전체로 소문이 퍼졌다. 결혼식이 있을 때면 동네 사람들은 너도나도 이 아이에게 축가를 부탁했다.

2010년 유럽 오페라계에 혜성처럼 나타나 '포스트 파바로티'라는 찬사를 얻고 있는 스물네 살의 천재 성악가 스테판 마리안 포프의 이야기다. 내달 2일 수지오페라단 주최 오페라 '리골레토'에서 만토바 공작 역으로 한국을 찾는 그를 이메일로 미리 만났다.

"노래하는 건 좋아했지만 성악가가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바이올린 연주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죠.여섯 살 때부터 12년간 바이올린을,그 후로 6년은 피아노를 쳤거든요. 열여덟 살 때 한 선생님이 학교 합창단에서 노래하는 걸 보고 루마니아에서 열린 콩쿠르를 제안하시면서 성악을 시작했어요. 남들보다 한참 늦었죠."

포프의 데뷔 무대는 2009년 로마 오페라극장에서 열렸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 역.마에스트로 프랑코 제페렐리의 눈에 띈 그는 이듬해 1월 아테네 오페라극장에서 같은 역할을 맡아 호평받았다.

이후 트리에스테 베르디극장,빈 국립 오페라극장,함부르크 국립 오페라극장을 거친 그는 지난해 서울국제콩쿠르 1위,세계적 성악 콩쿠르인 플라시도 도밍고 콩쿠르 1위를 동시에 거머쥐며 전 세계 음악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도밍고를 직접 봤다는 것만으로도 꿈만 같았죠.상을 받을 땐 가족들 생각이 제일 먼저 났고요. 라 보엠의 '그대의 차가운 손'을 불렀어요. 쟁쟁한 실력파 가수들 가운데 밀라노 스칼라 관중들이 주는 상이라 더 의미있었습니다. "

2015년까지 그의 달력에 빈칸은 없다. 2012년 라 스칼라 극장에 오를 오페라 '리골레토'의 만토바 공작 역으로 캐스팅된 것을 비롯 같은 해 팔레르모 마시모 극장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 역,스위스 로잔 극장 '사랑의 묘약'의 네모리노 역,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장미의 기사 이탈리안 테너 가수 역,2013년 함부르크 국립극장 라 트라비아타 알프레도 역,2013년 쾰른 오페라하우스와 2014년 함부르크 국립극장에서 리골레토의 만토바 역 등에 캐스팅됐다.

그는 "2015년까지 꽉 찬 스케줄을 보며 성악가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고,이제 비행기가 내 집이려니 한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안젤라 게오르규 내한공연 때 함께하면서 그녀가 '이런 테너의 목소리는 처음 듣는다'고 칭찬할 때 꿈만 같았다. 한국 관객도 빨리 만나고 싶고,한국의 불고기와 싱싱한 회도 그립다"고 말했다.

만토바 공작 역은 그에게 각별하다. 처음 출전한 루마니아 전국 콩쿠르에서 리골레토 중 '케스토 오 케야(Questo o quella)'를 불러 1등을 하고 루마니아 음악학교에 입학했다. 내년 라 스칼라 극장에서도 이 역할로 무대에 선다.

그는 스스로 악보를 철저히 분석하는 완벽주의자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 농가에서 자연과 어울려 자란 기억 때문인지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쉴 틈이 생기면 여자친구와 호수의 잔잔한 물결을 보며 낚시를 즐긴다고 한다.

포프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처럼 섬세하게 감성을 어루만지는 세계 최고의 성악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파바로티가 처음 투란도트 칼라프 왕자 역을 맡았을 때를 잊지 못한다. 2007년 그가 타계했을 때 정말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내달 2~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42-0350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