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입주민들이 건설사를 상대로 한 하자소송에서 이겨도 '하자 기획소송업체'에 성공보수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들 업체는 새 입주단지를 찾아다니며 "아파트 하자를 찾아줄 테니 승소하면 배상금의 일정액을 달라"며 소송을 부추겨 '아파라치'라고도 불린다. 법조 브로커와 유사한 행태에 법원이 경종을 울린 셈이다.

◆"아파라치 성공보수는 변호사법 위반"

18일 법원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제4민사단독(판사 김대현)은 최근 시설물 안전진단업체인 H사가 경기도 양주의 D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낸 약정금 소송에서 "H사가 입주자대표회의와 맺은 약정은 무효여서 돈을 받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H사는 기술자문료라는 이름을 빌려 실제로는 (소송에서) 성공보수를 받기로 약정했다"며 "이 약정은 변호사법을 위반한 반사회질서 행위"라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변호사법 109조1호에서는 변호사가 아니면서 금품을 받을 것을 약속하고 소송사건에 관해 감정 등 법률사무를 취급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H사는 이번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H사는 2008년 11월에 D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기술자문' 약정을 체결했다. D아파트에 발생한 하자와 부실 · 불량시공 등에 대해 입주자대표회의가 하자보수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고,이 과정에서 H사가 기술지원을 해 승소할 경우 합의금의 9%를 받기로 한 것.

입주자대표회의는 승소해 손해배상금 5억원을 받게 됐고 H사는 이 가운데 9%인 450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이를 거부하면서 양측은 법적 분쟁에 돌입했다.

◆업체,"승소에 따른 정당한 용역 대가"

법조계와 건설업계에서는 진작에 법적 판단이 나왔어야 할 사안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아파트를 분양받고 나서 집값이 오르지 않거나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가 늘면서 아파라치들이 불만에 쌓인 입주 예정자들을 부추겨 '소송을 위한 소송'을 대거 제기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민의 윤홍배 변호사는 "시설물진단업체들이 변호사를 끼고 신규 입주 아파트를 돌아다니면서 기획소송을 벌이고 있다"며 "대부분 판결에서는 지거나 기대했던 금액의 3분의 1 수준에 손해배상금이 나와 성공보수를 떼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윤 변호사는 "아파트 하자소송은 일단 손해배상을 받고 나면 (금액이 마음에 안 들어도) 다시 소송을 낼 수 없어 시작할 때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시설물진단업체들도 할 말은 있다. H사 관계자는 "법원이 변호사법을 너무 폭넓게 해석하고 있다"며 "정당한 용역에 대한 대가를 재판 결과에 따라 받기로 계약한 것인데 이를 변호사들만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아파라치

아파트와 파파라치의 합성어.신규 입주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시공 하자를 찾아주고 입주자들이 하자 손해배상 재판에서 이길 경우 배상금의 일정 비율을 대가로 받는 전문업체를 말한다. 변호사를 끼고 법원에 소송을 내거나 청와대,국민고충처리위원회 등에 무차별로 민원도 제기한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