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 결정권 우선" vs "태아는 연속성 지닌 생명체"

태아 생명권과 임신부의 자기결정권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

헌법재판소는 10일 오후 대심판정에서 의사, 조산사 등이 임부의 승낙을 받아 낙태하도록 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형법 제270조 제1항에 대해 제기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변론을 열었다.

이 조항이 과연 사회·경제적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경우에도 임신과 출산을 강요함으로써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지, 아니면 실질적으로 낙태를 막는 예방적 효과를 갖는지 등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청구인인 조산사(분만을 돕는 의료인) 성모씨의 대리인은 "아직 완전한 인간으로 형성되기 전의 태아보다는 이미 한 인격체로서 온갖 사회적 관계를 맺고 세상을 살아가는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외국에서도 임신 초기인 8~24주 단계에서 낙태는 허용하고 있다"며 "제한 없이 낙태를 허용하자는 것이 아니고, 태아의 생명권과 임부의 자기결정권 사이에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보자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반면 처벌법령 방어에 나선 법무부 측은 "착상된 이후의 수정란은 46개의 인간염색체를 지닌 독립된 인간이며 국가는 헌법에 따라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할 의무를 가진다"며 "태아는 생명체로서 연속성을 지니는 것으로 낙태가 가능한 경계선을 긋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이 처벌 조항이 실제로 무분별한 낙태를 줄이고 태아의 생명권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격론이 벌어졌다.

참고인으로 나온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낙태를 줄이기 위해서는 피임의 활성화, 미혼여성 및 저소득층 여성에 대한 출산 지원 등 다양한 방안과 지원이 필요하다"며 "법으로 처벌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법무부 측은 "통계에 따르면 낙태 건수가 줄고 있는데 수술을 해주지 않는 의료기관의 증가가 낙태 감소를 이끈 가장 큰 요인이라고 본다"며 "낙태죄 조항은 실제 실효성 있는 수단"이라고 맞섰다.

이정미 헌법재판관은 "처벌조항이 있음에도 현실에서 수십만~수백만 건의 낙태가 계속 행해지는 이유와 실제 기소 건수가 극히 미미한 이유는 무엇이냐"고 물었고 법무부는 "대부분 불법으로 이뤄지지만 관련자가 고소나 진정을 하기 전까진 밝혀지기 어려울 뿐 아니라 국민 법 감정이 낙태에 대해 큰 범죄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이와 반대로 이강국 헌재 소장은 낙태 처벌조항을 없애도 낙태 건수가 급증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근거를 물었고, 양 교수는 "낙태는 개인에게 너무나도 중요하고 불가피한 상황에서 이뤄지는 것이므로 처벌 유무에 크게 좌우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성씨는 작년 1월 `6주 된 태아를 낙태시켜달라'는 임부의 촉탁을 받고 태아를 인위적으로 배출하는 방법으로 낙태하게 한 혐의로 기소되자 "형법 270조 1항은 임부의 기본권을 제한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sj997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