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너무 커서 구제 못해"…"개혁 말만 말고 서둘러 이행해야"
伊여야 "3일 안에 개혁안 처리"…'개혁파' 몬티 등 새 총리 하마평

국채 금리가 심리적 마지노선인 7%대로 치솟자 이탈리아 정치권이 시장 불안을 진화하기 위해 개혁 조치를 서두르고 있다.

여야는 9일(이탈리아 현지시간) 연금 개혁과 국유재산 매각 등을 담은 개혁 방안을 이번 주말까지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유로존은 구제금융 방안을 배제한 채 이탈리아에 신속한 개혁 이행을 촉구했다.

◇정치권 "개혁법안 초스피드로 의회 처리" = 전날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후에도 이탈리아 국채 금리는 7%대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이탈리아 여야는 시장 압박에 밀려 최단기간에 경제안정방안을 의회에서 처리키로 합의했다.

상·하원 표결은 각각 11일과 12일로 예정돼 있다.

경제안정방안은 ▲경기부양을 위한 세금 감면 ▲국유재산 매각 ▲2026년까지 연금 지급연령 67세로 상향 ▲노동시장 유연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긴축 조치 중에는 2014년까지 국유재산을 매각해 150억유로(23조원 상당)를 마련하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연정 파트너 북부연맹 소속 상원의원을 인용해 전했다.

베를루스코니가 사임 의사를 밝힌 후 새 정부 구성을 조율하고 있는 조르지오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유럽연합(EU) 경쟁담당 집행위원 출신의 마리오 몬티 밀라노 보코니대학 총장을 종신상원의원에 지명했다.

몬티 총장은 베를루스코니의 후임자로 시장이 선호하는 인사로 거론되고 있다.

현지 일간 라레푸블리카는 몬티가 경제 비상사태를 지휘할 차기 총리감으로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으며 며칠 안에 총리 선출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단기간에 의회의 지지를 받아 새 정부를 구성해 개혁을 추진해 나가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서둘러 총선을 실시할 것"이라며 "이탈리아 의회와 정부가 장기간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는 전혀 근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베를루스코니는 측근인 안젤리노 알파노 집권 자유국민당(PdL) 사무총장을 후임으로 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로존 "구제금융 계획 없다" = 이탈리아 여야가 개혁 조치를 서두르는 것은 '국채금리 7%'의 상징적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도 금리가 7%를 넘기 시작한 지 각각 17일, 22일, 91일 만에 구제금융에 손을 벌렸다.

그러나 유로존은 이탈리아 구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익명의 유로존 관리는 "재정 지원은 현재 고려 대상이 아니다"면서 심지어 예방대출제도(PCL) 제공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PCL이란 건전성이 다소 떨어지는 국가가 심각한 위기 상태로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예방적 대출제도를 가리킨다.

유로존이 구제금융 방안에 난색을 표하는 것은 이탈리아의 경제 규모와 나라빚 규모가 너무 커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이탈리아 국가채무는 1조9천억유로(2천900조원 상당)이며 내년 한 해만 3천억유로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돼 이자부담과 만기연장이 버거울 지경이다.

민간에서 부실한 은행·기업이 너무 커서 망하게 내버려 둘 수 없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가 된 반면 이탈리아는 너무 커서 구제할 수 없는(too big to bail)는 국가라는 것이다.

◇"伊, 개혁 이행해야" = 결국 최선은 이탈리아가 스스로 긴축과 개혁을 통해 건전성을 회복하는 길뿐이라는 게 시장과 외부의 시각이다.

포르투갈을 방문 중인 장 클로드 융커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의장은 이날 "이탈리아는 개혁 조치를 발표만 말고 이행해야 한다"며 "차기 정부는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유럽연합에 약속한 내용을 모두 이어받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베를루스코니 등 이탈리아 정치권이 '꼼수'를 부려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이탈리아 보코니대학 출신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앞서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국채 금리 7%: 이는 베를루스코니에게 '당장(NOW)' 떠나라는 시장의 메시지다.

결산안이 통과되고 나서 2주 있다가 물러나는 척하는 베를루스코니의 계획을 시장이 받아주지 않은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로마·브뤼셀·리스본 AP·AFP·dpa=연합뉴스) tr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