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Biz] "증권사는 블랙잭 딜러" 법정은 비유의 경연장
지난달 7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311호 형사대법정.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형두) 심리로 열린 주식워런트증권(ELW) 스캘퍼 박모씨 등에 대한 공판에서는 '비유의 향연'이 벌어졌다. 검찰과 변호인,판사 등이 ELW 시장과 초단타매매 등의 성격을 규정하기 위해 각종 비유를 들며 질의응답과 논쟁을 펼쳤다.

김형두 부장판사는 증인으로 나온 박선종 고려대 법학연구원 연구원에게 "유동성 공급자(LP)는 블랙잭에서 딜러가 자기 패를 미리 보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블랙잭에서 딜러는 자기 카드가 뭔지 모르는데 ELW에서는 딜러 역할을 하는 LP가 얼마에 팔건지 자기가 정하지 않느냐"는 내용이었다. 김남순 검사는 "싼 가격의 ELW가 있어 빨리 가서 채고 싶은데 100명이 기다리는 패스와 5~6명이 기다리는 패스가 있다면 불공정거래 아니냐"고 질문했다.

박 연구원은 "이마트가 싼 줄 알고 10000원에 생선을 사는데 가락동에서 새벽 4시에 경매인들이 5000원에 산다고 문제 삼는 꼴"이라고 반박했다.

법정은 언어의 향연장이다. 증인과 피의자,피해자 등에게서 원하는 답변을 얻어내고 판사와 배심원을 설득하기 위해 온갖 화술이 동원된다. 법원에서 구술심리를 강화하면서 말을 잘하는 게 중요해지고 있다. 다만 '말발'을 잘못 세웠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다.

◆"판사에게 숟가락으로 밥 떠먹여줘야"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미국의 리처드 포스너 연방항소법원 판사가 쓴 칼럼 내용이 금과옥조로 받아들여진다. "판사에게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여주듯,판사가 판결을 내리기 쉽게 하는 게 변호사의 요체"라는 내용이다.

지난 14일 삼성전자와 애플 간 특허침해소송 재판에서 애플 측 김앤장 변호인은 복잡한 특허기술 내용을 "삼성의 기술은 단순히 (행렬에서) 뒤에 있는 숫자를 앞으로 보낸 것에 불과하다"고 한마디로 요약했다. 이에 삼성전자 측 광장 변호인은 "전 세계 수학자들이 끙끙대면서 한 건데 그걸 그냥 앞으로 보내면 된다는 게 말이 되냐"고 즉각 반박했다.

역설화법으로 판사를 설득하는 기법도 있다. 이정훈 변호사는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인 '만삭 아내 살해사건'에서 아내를 목 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지난 9월15일 1심에서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은 의사남편 백모씨를 변호하고 있다. 그는 앞서 지난 8월 1심 선고전 마지막 공판에서 "백씨가 유죄라면 한 달 후 자신의 아이를 낳을 부인을 살해한 인면수심의 살인마"라며 "재판부가 유죄라고 판단한다면 법이 허용하는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해 달라"고 변론했다.

◆때로는 인신공격 수준 '맹공'

한 변호사는 "판사를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뢰인의 성에 차게 말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년 전 그는 믿었던 지인에게 거액의 사기를 당한 의뢰인의 민사소송을 맡았다. 피해액을 원상회복한 것도 중요하지만,배신을 당한 의뢰인 입장에서는 심정적 억울함이 더 컸다. 의뢰인은 소송 진행 과정에서도 자신의 배신감을 계속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판사 앞에서 법적 논리를 펼치는 데도 힘을 기울였지만 틈나는 대로 피고와 피고 측 변호사를 몰아붙였다. "어떻게 자신을 자식처럼 대했던 원고에게 피고는 이런 짓을 할 수 있습니까" 정도는 점잖은 수준이고 인신공격의 선을 넘나드는 맹공을 퍼부었다. 소송에서 이기긴 했지만 피고가 전 재산을 탕진한 상태라 실제 피해회복은 적었다. 그러나 의뢰인은 만족스러워하며 보수를 지급했다고 한다.

그는 "의뢰인이 변호사님이 말씀하실 때마다 속이 시원했다, '그놈(피고인)'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를 변호사님이 딱딱 짚어주니 판사님도 살펴주신 게 아니냐는 말을 했다"면서 "하지만 사실은 판사가 재판 매너와 관련해 지적하고 안좋은 인식을 가질까봐 걱정이 됐던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자백만이 살길이다"

검찰의 피의자 신문에서도 화술이 중요하다. 위압적으로 취조해도 안될 만한 피의자들에 대해서는 마음을 터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를 '라포르(rapport · 관계)'라고 한다. 예컨대 물건을 훔친 피의자에게 "언제 어떻게 훔쳤냐"고 묻는 대신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해봐라.어떤 성장환경이 당신을 이렇게 행동하게 만들었느냐"는 등의 질문으로 답변을 이끌어낸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통상 피의자의 70%는 양심의 가책이나 거짓말에 대한 불이익 우려 등 때문에 범죄를 자백하게 마련"이라며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 자백을 이끌어내느냐의 문제인데 라포르 방식이 통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오히려 위압적인 방법이 잘 통할 피의자에 대해 라포르 방식을 사용했다가는 심적 여유만 줘 진술을 받는 데 더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아예 라포르 방식을 쓰지 않는 검사들도 있다. 한 지방의 특수부 검사는 조사실에 "자백만이 살길이다"고 써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멋진 화술도 물증 앞에선…

재판에서는 말을 많이 한다고 좋은 건 아니다. 중소 로펌의 강모 변호사는 "아무리 중요한 이야기라도 판사가 듣기 싫어할 거 같으면 재판에서는 말하지 않고 서면으로 내는 게 좋다"고 귀띔했다. 말을 잘해도 역시 물증만한 것은 없다.

언변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A변호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재판에서 수려한 화술을 펼쳤다. 그런데 상대방 변호사가 A변호사가 법정에서 한 말과는 정반대의 내용으로 쓴 논문을 찾아내 법정에 제출했다. 이를 읽어본 판사는 "A변호사님이 논문에서 쓴 내용이 하나도 틀린 게 없어보이네요"라며 다소 빈정대듯 말했다. A변호사의 얼굴은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

임도원/이고운 /김병일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