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게임업체인 넥슨이 일본 증권시장에 상장한다. 최근 해외기업 유치 실적이 저조한 한국거래소(KRX)와 증권업계로서는 국내 우량기업을 빼앗겨 체면을 구기게 됐다.

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넥슨은 이번주 내 도쿄증권거래소의 승인을 받아 다음달까지 상장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국내 기업이 일본 증시에 상장하는 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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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문에 따르면 넥슨의 상장 후 시가총액은 6000억~7000억엔(8조5000억~10조원)으로 추산된다. 국내증시에 상장된 게임업체 중 가장 시총이 많은 엔씨소프트(7조8096억원)보다 큰 것은 물론 올해 일본 내 기업공개(IPO) 중에서도 최대 규모다. 일본 관계자들이 "침체된 일본 IPO시장의 활력제가 될 것"이라며 기뻐하는 반면 국내 자본시장 관계자들의 입맛은 쓰다. 국내 시장과 투자자들로서는 국내에 상장할 수도 있었던 대어를 놓친 셈이 됐기 때문이다.

◆적극적 해외 M&A가 이유

넥슨은 도쿄증시에 상장키로 한 이유로 해외진출을 우선 꼽았다. 넥슨 관계자는 "넥슨은 매출의 70% 가까이를 해외에서 올리고 있다"며 "이미 내수기업이 아닌 만큼 세계적인 게임회사가 되기 위해 해외기업을 적극적으로 인수 · 합병(M&A)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도쿄증시에 상장하면 해외업체,특히 일본 게임회사 인수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로 꼽고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M&A를 통해 성장세를 이어온 넥슨으로선 일본 게임회사 인수 가능성에 매력을 느꼈을 것"으로 분석했다.

처음부터 일본 상장을 목표로 그룹 지배구조를 짰다는 설명도 있다. 이번에 상장되는 일본 넥슨은 한국 미국 유럽의 계열사를 모두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는 사실상의 지주회사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밸류에이션 (실적 대비 주가수준) 매력이 줄었다고 이미 짜여진 지배구조까지 바꿔가며 국내 상장에 나서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밸류에이션 매력은 없다는데…

넥슨이 도쿄증시를 선택한 데 대해 증권가에서는 의아하다는 반응이 우세하다. 국내 증시에 상장하는 것과 비교할 때 조달금액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 데다 상장 절차는 더 복잡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게임주는 국내보다 5배 가까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최근 들어선 차이가 없어졌다. 한 게임 담당 애널리스트는 "예상 시총을 근거로 추산하면 넥슨은 주가수익비율(PER) 20배 정도의 평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며 "10배 후반에서 20배 정도인 국내 상장 게임업체의 PER과 큰 차이 없다"고 지적했다.

상장 절차는 훨씬 복잡하다. 윤희웅 율촌 변호사는 "종업원이나 친척 중에 야쿠자가 있는지까지 조사하고 한 번 상장에 실패하면 재상장에 나서지 못하게 할 정도로 일본 상장절차가 까다롭다"며 "일본 기업들이 한국 IPO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도 "일본 상장절차가 복잡한 만큼 상장을 주관한 골드만삭스와 노무라증권은 수백억원의 수수료를 챙기게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넥슨은 몇 배에 달하는 수수료를 물어가며 일본 상장을 추진한 셈이다.

◆도마 위에 오른 한국거래소

국내 투자자들은 우량회사에 대한 투자 기회를 잃게 됐다. 일본 주식에 직접 투자할 수도 있지만 국내에서 0.1% 안팎인 주식 중개 수수료가 0.7~1.0% 수준까지 올라가는 데다 수익에 대해서도 20%의 양도세를 물어야 해 만만치 않다.

해외 기업 유치를 통해 국내 증시를 활성화하겠다던 한국거래소의 우량기업 유치 의지 및 역량 등도 도마에 올랐다. 국내 상장 16개 외국기업의 시가총액은 8일 현재 2조1655억원.넥슨 예상 시총의 20% 수준이다. 거래소는 최근 수년간 해외에서 매년 국내 증시 상장 설명회를 개최했지만 넥슨의 상장을 유치하려는 시도는 2005년 한 차례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경목/장성호/김주완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