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국회에도 '애정남'이 필요하다
우리는 왜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은 되고 미국과의 FTA는 안 되는가. EU와의 FTA에서는 EU의 식민지가 된다는 괴담이 없었는데,왜 한 · 미 FTA 때는 미국의 식민지가 되고 맹장수술비가 900만원이 든다는 괴담들이 쏟아지고 있나. 또 EU와의 FTA 때는 국민투표하자는 말이 없었는데,미국과의 FTA에는 왜 국민투표하자는 말이 나오는가.

미국이 그토록 싫은가. 6 · 25 때 우리를 도와 자유를 지켜주고 그 후 군사동맹을 맺어 안보와 번영을 지켜주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것이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 행위란 말인가. 어떻게 대명천지 대한민국에서 이런 비상식이 큰 소리를 낼 수 있는가.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해괴한 괴담이 남녀노소 간에 공포감을 유발시킨 기억이 생생한데,또 한바탕 괴담 소동을 벌여야 하겠는가. 우리는 상식과 순리를 찾아야 한다.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상식에 입각해야지 거짓과 괴담이 춤추면 '늑대와 춤을 추는' 상황이 된다.

비상식은 또 있다. 민주사회에서 여야간,좌파와 우파 간,세대 간 의견이 다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의견이 달라 하나로 합일되지 않는 상황에서 요구되는 것이 표결이다. 표결을 하면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하지만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고 상식일터.누구나 승자가 되고 패자가 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그게 바로 비상식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의견이 다를 때 표결조차 하지 못하는 우리 국회의 한심한 모습을 보라.우리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는 주말에도 농성 중이다.

월 · 화 · 수 · 목 · 금 · 금 · 금으로 이뤄지는 국회농성,어떻게 국회에 상식이 있다고 할 수 있나. 투표도 못하게 점거농성하면서 또 강행처리는 반대하니,이보다 더한 비상식이 어디 있는가.

이렇게 진실과 상식이 존중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민주주의냐,자유민주주의냐" 하면서 논쟁을 벌이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불과하다. "한 · 미 FTA로 모든 걸 미국자본에 넘겨 준다"는 거짓과 선동이 넘쳐나는 나라에서 헌법 제1조에 나오는 대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노래를 지어 부르고 다니기만 하면 무엇하나.

확실히 한국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다. 한국 국회는 자신을 표현하는 정체성에서 '민주'라는 말을 빼야 한다. '점거농성 국회' '근육질 국회'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일 터다. 서구의 민주의회에는 의견 충돌이 있어도,또 의견이 치열하게 충돌할 때마다 오히려 표결로 처리하고 승패를 받아들이는 데 반해 우리는 어떤가. 국회에서 허구헌날 패자부활전이니 소수의 권리존중이니 하면서 몸싸움을 하며 장외투쟁으로 나가고 국민투표를 외친다. 이래서는 민주주의도 아니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도 아니다. 물론 '반(反)미국'도 있을 수 있고,'반FTA'도 있을 수 있으나,'반민주'는 안 된다. 몸으로 표결을 막는 국회가 어떻게 민주국회인가.

물론 이런 말은 민주당과 민노당에는 마이동풍일 뿐이다.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내년 총선과 대선만 이기면 되는데,'품위있는 국회' '폭력없는 국회' 등 폭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우리 국회는 참으로 웃기는 국회다. 국회가 폭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것도 우습고 또 그런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도 우습다. 신성한 교회나 학교에서 폭력이 없어야 하는 것은 약속이 없어도 지켜야 할 절대규범 아닌가. 마찬가지로 신성한 국회에서의 폭력금지도 절대규범인데,폭력추방을 무슨 대단한 일인 양 공개적으로 약속을 하고 또 그 약속조차 지키지 않으니 개그가 따로 없다.

개그 콘서트의 애정남이여! 부디 이런 국회를 판단하라.쟁점만 생기면 사생결단하는 우리국회는 대의기관인가,아니면 조폭기관인가.

박효종 < 서울대 정치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