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고용 감소를 선진국 모델로 착각…영세서비스업만 팽창
제조업 고용 감소를 선진국 모델로 착각…영세서비스업만 팽창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도약한 국가들은 '제조업 취업자 수 감소'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선진국이 될수록 2차산업(제조업)에서 3차산업(서비스업)으로 경제구조가 고도화된다는 이론(페티ㆍ클라크법칙)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다. 제조업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고부가가치 첨단 서비스업이 아니라 음식점이나 숙박업 등 영세자영업에 대거 편입됐는데도 산업구조가 서비스업 중심으로 선진화됐다고 착각한다. 그 결과 중간 수준의 일자리는 없고 실업이 만성화한다.

◆뒷걸음치는 세계순위…성장의 정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00년 5333억달러로 세계 12위였다. 인도는 한 단계 낮은 13위(4763억달러)였고 호주는 4009억달러로 그 뒤였다. 하지만 10년 뒤인 2010년에는 이 순위가 역전됐다. 한국의 순위는 15위로 뒷걸음쳤고,인도(9위)와 호주(13위)가 우리 앞에 섰다. 김종일 동국대 경제학 교수는 "한국은 노동과 자본의 양적확대에 기반한 성장 가능성이 1990년대에 이미 종료됐다"며 "앞으로 잠재성장률은 생산성 향상이라는 질적 요인의 개선이 없다면 빠르게 낮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순위도 문제지만 성장의 속도에서도 경쟁국과 차이가 난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GDP는 5333억달러에서 1조144억달러로 90.2% 늘었다. 반면 호주는 4009억달러에서 1조2373억달러로 2배 넘게 늘었다. 인도는 4763억달러에서 1조6319억달러로 2.5배 가까이 증가했다.

경쟁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성장 정체는 심각한 문제다. 고도성장기를 거친 선진국들과의 GDP 격차가 좁혀지기는커녕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KDI마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10년 4.1%에서 2020년 2.8%,2030년 1.7%로 계속 하락할 것으로 추정했다.

10년 전 20위권 밖이었던 인도네시아는 지난해 경제순위가 한국보다 불과 세 단계 아래인 18위로 치고 올라왔다. 골드만삭스는 BRICs를 이을 새로운 국가군으로 넥스트11을,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마빈스(MAVINS)를 지목했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은 두 곳 모두에 포함됐다.

◆중진국 고착화되나

경제학자들은 한국이 앞으로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지위를 지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이 나가떨어지는 상황에서 그나마 중국이 옆에 있어 경제가 버텨주고 있다"며 "미국이 중국으로 바뀐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아직은 연 9% 가까운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지만,성장률이 7%대로 떨어지기만 해도 한국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국제 투자은행들은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올해 4분기부터 7%대로 하락하면서 중국경제가 경착륙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중국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한국 성장률도 0.3~0.5%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추산했다.

지금까지 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 산업이 성장을 견인했지만 세계 경기변동에 따른 리스크도 덩달아 커진 점은 한국 경제가 가진 구조적 취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 GDP 대비 수출비중은 2000년 38.6%에서 지난해 52.4%로 급증했다. 이는 주요 20개국(G20) 중 최고 수준이다. 독일은 33.6%,일본은 11.4%이며 미국은 7.5%에 불과하다.

◆제조업 일자리 감소가 문제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다보니 고용도 정체에 빠졌다. 2000년 59.0%였던 고용률(경제활동인구 대비 취업자 비율)은 최근에도 60%를 넘지 못하고 있다. 10년 동안 1%포인트도 증가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취업자수도 2000년 2115만명에서 지난해 2382만명으로 10년간 267만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국내 제조업 취업자 수는 1967년 처음 100만명을 넘어섰고 1991년에는 500만명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 이후 급격한 임금상승에 따른 공장 해외이전과 대기업들의 자동화투자 확대,외환위기 직후 대량 감원과 해외직접투자 활성화 등으로 제조업 취업자 수가 크게 줄었다. 지난해 제조업 취업자 수는 402만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16.9%에 불과했다.

반면 도소매와 숙박 등 영세서비스 고용비중은 40%로 선진국(20%)에 비해 월등히 높다. 한국의 서비스업 중 도소매 · 음식 · 숙박업의 고용비중은 멕시코 터키 그리스 등과 함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최상위권이다.

제조업 일자리를 중시하고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높이지 않는 한 중산층이 두터워지는 경제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사회격차 해소를 위한 내수시장 활성화와 경제성장 지속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정책배합을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자리 창출 없이 복지문제 해결은 어렵다"며 "안정적인 경제기반을 갖춰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 정책의 우선목표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