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보금자리주택의 재앙
결국 '미친 전셋값'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강남이 아니라도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2년 전보다 50% 이상,배 가까이 오른 곳이 즐비하고 중소형의 상승폭만 1억~2억원 단위다. 앞으로 폭등 행진이 멈출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매물은 없고 수요는 많아 부르는 게 값이다.

'전세 난민'들은 턱없이 오른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싼 곳을 찾아 서울 외곽 이곳저곳으로 떠돌고 있다. 주거 안정이야말로 서민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건의 하나다. 전셋값 폭등은 그들의 생활기반을 흔드는 사회불안 요인인 것이다. 그런데도 해법이 없다. 올 들어서만 벌써 몇 차례 대책이란 게 나왔지만 불붙은 데 부채질하는 격이었다.

'미친 전셋값'은 지난 노무현 정부 때 '미친 집값'의 반작용이다. 아마도 전세난을 이토록 심각한 상황으로 오게 만든 것이 이명박 정부 최대의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정책 책임을 따지자면 '보금자리주택'이 그 첫 번째다. MB 부동산 정책의 상징인 '반값 아파트' 보금자리주택의 신기루가 낳은 재앙이다.

의도는 좋았다. 수도권 그린벨트를 풀어 정부(LH)가 기존 분양가의 절반 값에 질 좋은 아파트를 공급함으로써 서민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한다는 취지였다. 싼 분양가에 적지 않은 시세차익이 따라오니 청약 열풍은 당연했고 민간 아파트 가격은 거품으로 인식돼 주변 집값이 떨어졌다. 그래서 집값을 잡은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문제가 불거지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강남 세곡과 서초 우면의 시범지구에서 아파트가 반값에 분양되자 온통 보금자리주택만 쳐다보면서 아무도 집을 사려 하지 않고 전세만 찾게 됐다. 매매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그 결과가 매매값은 계속 떨어지는데 전셋값만 치솟는 '주택시장 양극화'다.

시장왜곡 다음은 악순환이다. 정부가 독점한 그린벨트 요지의 값싼 보금자리주택에 밀려 민간 건설회사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게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도 없어져 주택매수 심리는 더 싸늘해졌다. 신규 주택공급이 급속히 쪼그라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루아침에 뚝딱 집을 지어낼 수 없으니 공급부족 사태는 앞으로 몇 년 더 전세대란의 늪을 벗어나기 어렵게 할 것이다.

무엇보다 애초 보금자리주택은 지속 가능하기 어려운 무리수였다. '공공의 녹지'인 그린벨트를 풀어 '반값'을 실현했지만,정작 혜택은 운 좋은 일부 당첨자들에게 지나친 시세 차익을 안기는 공평성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결국 '로또' 논란으로 분양가를 주변시세의 80~85% 선으로 높이기로 하면서 이제는 진짜 서민들이 감당하기 벅찬 집값이 됐다.

서울 인근의 그린벨트도 소진되고 있다. 값싼 아파트를 더 지을 만한 땅이 없다는 얘기다. 그뿐이 아니다. 그린벨트 땅 주인들은 낮은 보상가로 땅만 빼앗긴다고,인근 주민들은 집값 하락을 부추긴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 때문에 경기 과천지식정보타운의 경우 보금자리주택 공급물량이 당초의 9600여가구에서 절반으로 줄어들게 됐다.

서민들의 집 걱정을 없애주겠다는 보금자리주택이 오히려 민간 주택공급의 맥을 끊어 서민들의 고통만 키우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이다. 집값은 많이 올라도,많이 떨어져도 말썽이다. 주택은 수요와 공급이 조금만 어긋나도 그 가격이 과도하게 반응한다.

지금의 '미친 전셋값'은 공급 부족에 따른 시장의 문제다. 새 집이 지어지지 않는 것은 매매시장이 죽은 탓이다. 그 부메랑이 집값 폭등으로 되돌아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집을 사려는 수요를 일으켜야 신규 주택이 공급되고 꼬일 대로 꼬인 주택시장 정상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이 시장의 작동메커니즘이자 원칙이다. 시장을 거슬러 민간 주택공급 체계를 무너뜨린 보금자리주택의 아집(我執)부터 버리는 데서 길을 찾아야 한다.

추창근 기획심의실장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