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나쁜 복지' 알면서도 좇는 사회
'해님달님'이라는 전래동화를 기억할 것이다. 그 이야기에는 어린 두 남매를 집에 두고 고개 너머 마을에서 일을 해주고 돌아가는 엄마에게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호랑이가 나온다. 하지만 떡을 하나 주면 먹고 나서 또 달라고 한다. 엄마가 가지고 있던 떡을 다 빼앗아 먹고 나서 엄마까지 잡아먹고,그것도 모자라 남매가 남아 있는 집에 가서 엄마 흉내를 내며 아이들까지 해치려 했던 호랑이다.

8 · 24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유효투표 수에 미달돼 무산되면서 전면적 무상급식 정책이 탄력을 받게 됐다. 이에 자극을 받아 정치권은 의료와 보육,교육 등 더 많은 분야에서 더 많은 혜택을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무상 복지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쏟아낼 것으로 보인다. 주민투표 전부터 예상되던 일이긴 하지만 막상 닥치니 앞이 캄캄해진다. 보편적 무상 복지 프로그램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하는 호랑이처럼 우리의 생산능력을 조금씩 조금씩 파괴하고 종국(終局)에 가서는 그 기반까지 몰락시켜 우리 다음 세대 아이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것이다.

많은 무상 복지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수용할 재원(財源)이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그 재원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국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통해 걷어야 한다. 국민들의 조세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조세 부담이 늘어나면 일하고 싶은 인센티브가 떨어지고 조세 회피 역시 늘어남에 따라 국가의 전반적인 생산성이 떨어지게 된다.

생산성이 하락함에 따라 세금을 올려도 정부의 조세 수입은 줄게 된다. 복지 지출은 늘고 조세 수입은 줄게 되면 결국 정부는 채권을 발행해 돈을 빌려야만 한다. 재정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생산 기반이 취약해지고 재정 적자가 누적돼 국가 부채(負債)가 일정 수준을 넘어 가면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전철을 밟은 국가가 하나둘이 아니다. 소위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며 복지 지출을 늘렸던 모든 국가들이 다 그랬다.

최근 재정 위기에 빠진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과 아르헨티나가 대표적인 국가들이다. 미국과 일본 역시 심각한 재정적자로 이미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하거나 하락할 위기를 맞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복지제도를 갖고 있는 스웨덴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스웨덴은 잘 갖춰진 복지제도와 함께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스웨덴은 19세기 후반까지도 아주 가난한 나라였다. 외국과의 개방적인 무역과 자유로운 기업활동 등 자유 시장 개혁을 통해 스웨덴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부터 이른바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복지제도를 도입하면서 노동생산성이 하락하고 경제가 쇠퇴(衰退)하기 시작해 1990년대 초까지 극심한 경제침체를 겪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 홍역을 치르다가 1990년대 초에 복지제도를 개혁하고 세금을 인하하며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고,많은 규제 완화를 단행하는 구조개혁을 하고 난 뒤 요즈음 다시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보편적 복지제도의 후유증(後遺症)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거기에서 벗어나고자 지금도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남들이 경험한 후,그 길이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보여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길로 치닫고 있다. 복지제도가 필요없다는 말이 아니다. 좋은 복지제도는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 정말로 가난한 사람을 위한 프로그램이 좋은 복지제도다. 국민의 50%,70%가 복지혜택을 받는 프로그램은 우리를 잡아먹는 호랑이와 같은 나쁜 복지제도다. 내년 총선과 대선이 걱정이다.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우리 국민들이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안재욱 < 경희대 경제학 교수 /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