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가족관이나 역할관에 대해 사람들은 흔히 남자가 전업주부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틀에 정해지지 않은 자유로운 이미지를 떠올린다. 특히 서구 여성은 독립적이고 커리어를 중시하는 도회적인 이미지로 대표된다. 그러나 최근 오스트리아 경제부와 청소년가족부가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는 기존의 고정관념과 상당히 다른 결과를 나타내 관심을 끈다.

'가족'을 테마로 실시한 이번 설문조사는 오스트리아의 14~24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점은 여성 응답자의 55%가 "배우자의 수입만으로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다면 기꺼이 전업주부가 되고 싶다"고 답한 것이다. 과거 오스트리아 여성들이 경제적 독립 및 '일과 사회적 성공을 통한 자아 실현'을 큰 가치로 여겼던 것과 대조된다.

글로벌 경제 위기와 이에 따른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고용 불안 및 업무 스트레스가 증가해 오스트리아 젊은 여성들이 보다 안정적이고 편안한 삶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이 밖에도 오스트리아 젊은 세대들의 가족관을 알아볼 수 있는 흥미로운 결과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 전체의 74%가 '가족'은 매우 중요한 가치이며 가족을 갖기를 원한다고 응답해 '개인주의 확산에 따른 가족 해체 위기' 문제가 오스트리아에서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과 직장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커리어를 쌓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중요한가'는 질문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64%(남성 53%,여성 76%)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오스트리아의 젊은 세대가 '여성들에게는 가정과 아이를 돌보는 것이 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며,남성들에게는 직장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는 보수적인 역할관을 갖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출산 및 육아와 관련해 오스트리아의 사회적 지원 시스템은 상당히 우수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곳에서는 출산을 전후해 2개월씩 총 4개월 동안 급여의 100%가 지급되는 유급 출산 휴가가 법적으로 보장돼 있다. 본인이 희망한다면 출산 후 최대 30개월(부모 양측이 번갈아 사용할 경우 최대 36개월)까지 육아 휴직을 사용할 수 있으며,이 기간 동안 매달 450유로(한화 약 70만원)의 육아 보조금이 지급된다.

최근 이런 육아 보조금이 고소득 여성들에게는 자녀 양육을 위한 휴직기간 동안 포기한 '소득의 보상' 측면에서 너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자신의 상황에 맞는 육아 보조금 제도를 선택할 수 있도록 관련법이 개정됐다. 소득의 일정 부분을 지급하는 소득연동제 육아 보조금,수급 기간을 줄이고 월 수급액을 늘리는 탄력적 육아 보조금(12개월,24개월,30개월 중 택일) 등으로 출산 및 육아에 따르는 여성들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유치원과 탁아소 등 공공 및 사립 시설을 포함한 오스트리아의 관련 시설은 질과 양에서 매우 우수한 편이다. 가사 및 육아와 관련해 남성들의 참여 비중 또한 높아 일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소위 '워킹 맘'들에게는 매우 좋은 환경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번 조사는 우수한 제반 여건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에서 커리어나 사회적 성공보다 육아나 가사에 전념하는 이른바 '전업 주부' 역할을 선호하는 젊은 여성들의 숫자가 점점 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글로벌 경제 위기가 낳은 또 하나의 새로운 사회 풍속도라고 할 수 있다.

김승욱 < KOTRA 빈 센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