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굴지의 S로펌은 이달 초 의뢰인으로부터 5억여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했다. 이 로펌은 의뢰인을 대리해 같은 액수 규모의 민사소송을 진행하다 지난 2월 패소했다. 지는 경우야 다반사지만,문제는 패소 사실을 항소기간이 1주일이나 지나서야 의뢰인에게 알려준 것.S로펌에 따르면 더욱이 의뢰인과 담당 변호사는 친척관계였다. 항소도 못한 채 패소를 확정받은 의뢰인은 소장에서 "법률전문가들이 항소기간이 지난 것도 모른다"며 분개했다. S로펌의 담당 변호사는 "비서가 통상 알아서 재판 결과를 의뢰인에 알려주는데 친척이라 직접 얘기하려다 깜빡했다"고 말했다.

'달인'도 실수하게 마련이다. 법조인들의 실수는 유독 치명적일 때가 많다. 의뢰인이나 사건 관련자들의 운명을 뒤바꿔 놓기도 한다. 그 여파는 고스란히 법조인에게 돌아온다. 본인은 물론 자신이 속한 조직이 휘청일 수도 있다. 재산적인 피해가 없더라도 평생 마음의 상처로 남기도 한다.

◆빼먹은 문의전화 한통에 로펌 '기우뚱'

로펌 업계에서는 회사의 잘못된 업무수행으로 의뢰인들에게 피해가 가는 경우를 '맬프랙티스(Malpractice)'라고 부른다. 맬프랙티스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2006년 LG카드(현 신한카드) 매각 자문건이 꼽힌다. 산업은행은 당시 국내 금융계의 판도를 뒤바꿔 놓을 '빅딜'로 꼽혔던 이 매각의 자문을 이른바 '5대 대형로펌' 대신 전 부총재가 고문으로 있는 중견 S로펌에 맡겼다.

LG카드는 당시 증권거래법 상 '공개매수' 대상이었는데도 S로펌은 이런 내용을 산업은행에 알리지 않았다. S로펌이 금융감독원에 문의전화 한 통만 했어도 알 수 있는 사항이었다. 산업은행은 뒤늦게 금융 당국의 지적을 받고 매각절차를 잠정 중단했다. 이후 공개매수와 경쟁입찰을 혼합한 기형적인 입찰방식으로 매각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 10위권 진입을 넘보던 S로펌은 명성에 치명타를 입어 이후 줄곧 20위권 밖을 맴돌게 됐다.

◆5분 늦었더니 법정 문은 잠겨 있고…

'건망증'은 최대의 적이다. 최근 재판의 변론기일 때 법정에 도착한 A변호사는 가방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소송 기록을 넣은 봉투를 안 챙겼던 것.어영부영하다 재판은 시작됐고,재판부가 사안에 대해 물어볼 때마다 기억나는 대로 대충 답변하면서 "자세한 내용은 서면 제출로 대신하겠다"고 말끝마다 덧붙였다.

재판 시간을 깜빡했다가 낭패를 보기도 한다. B변호사는 지난달 14시30분 재판을 오후 4시30분으로 알고 있다가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부랴부랴 법원으로 향했다. 재판에 5분 늦었더니 법정은 이미 불이 꺼져 있고 문까지 잠겨 있었다. 엄격한 재판장이 재판시작 후 5분이 지나도 변호사가 오지 않자 그냥 가버렸던 것.며칠 후 "재판일정을 확인해보니 변호사가 불출석해 재판이 취소된 것으로 나왔는데 도대체 어찌된 거냐"며 화내는 의뢰인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재판 날짜 바꾸려다 소송 취하

법조인들은 직원들 실수로 낭패를 보는 경우도 많다.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한 의뢰인의 소송을 맡은 C변호사는 최근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재판기일에 다른 일 때문에 나갈 수 없게 되자 사무실 직원을 시켜 변론기일 변경신청서를 내게 했다. 그런데 이 직원이 실수로 소송취하서를 낸 것.결국 그렇게 소송은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의뢰인은 변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법원은 수임료 1200만원은 물론 의뢰인이 입었을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2000만원까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약식명령의 경우 법원직원들이 기계적으로 작성해 판사에게 넘기는데 판사들도 검토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김모 판사는 벌금 1억원을 미납한 피고인에게 법원직원이 작성해온 대로 "하루 5000원 벌금납입으로 환산해 노역장에 유치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는 인사가 나서 다른 법원으로 옮겼는데 이전 법원의 판사로부터 전화를 받고는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1억원은 하루 5000원으로 환산할 경우 2만일이나 돼 이 피고인은 54년여를 노역장에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형법상 이 기간은 3년을 넘지 못하도록 돼있다. 김 판사는 얼른 자신의 도장을 넘겨줘 약식명령장을 새로 작성하게 했다.

◆판사 골무로 드러난 '봐주기 의혹'

법조인들의 실수에서는 전관예우 등 비리가 드러나기도 한다. 수도권에 있는 Y검사는 몇 달 전 횡령 등 범죄를 저지른 기업인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기각당했다. 그런데 기각 시간이 너무 일렀다. 영장청구 기록이 50쪽을 넘어 밤늦게나 결과가 나올 줄 알았는데 오후 2시에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시작한 후 오후 6시쯤에 기각된 것.기록을 다시 받아보니 앞에 몇장 빼고는 페이지를 넘긴 흔적이 없고 중간에는 담당 판사의 골무가 끼워져 있었다.

담당 판사는 피의자의 변호인과 대학 동기였다. 기록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동기인 변호사 사건을 봐준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이를 보고받은 부장검사는 판사에게 골무를 돌려주도록 했다. '기각하신 영장청구 기록에 끼워져 있었다'는 메모도 동봉시켰다. 골무를 받은 판사는 얼굴이 새하얗게 됐다고 한다. 검찰은 이후 기존 기록을 그대로 보내 영장을 재청구했고,담당 재판부는 영장을 발부해줬다.

임도원/심성미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