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억원 중 학자금 목적 42%..`돌려막기'도 심각
금감원 "가족관계 요구, 가족에 채권추심 안돼"

대부업체의 돈을 고금리로 빌려쓴 대학생이 급증하면서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금융채무불이행자) 신세로 전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부업체의 대학생 대출 약 800억원은 대부분 학자금과 생활비 마련 목적인 것으로 파악돼 비싼 등록금과 취업난이 대학생에게 빚을 지도록 몰아가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게다가 일부 대부업체는 대출을 받으려는 대학생에게 빚을 대신 갚을 수 있는 가족관계를 요구하고 부모에게 대출금을 갚으라고 독촉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은 대부업체가 빚을 갚을 능력이 부족한 대학생에게 무턱대고 돈을 빌려준 데도 문제가 있다고 보고 대출을 자제하도록 지도하는 한편 대학생을 상대로 한 불법 채권추심 행위를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대학생 대출연체율 15%..신용불량자 급증
4일 금감원이 개인 신용대출을 주로 취급한 40개 대부업체의 대출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대부업체를 이용한 대학생은 지난해 6월 말 3만494명에서 올해 6월 말 4만7천945명으로 1년 만에 57.2% 증가했다.

이들이 빌린 대출금도 같은 기간 565억8천만원에서 794억6천만원으로 40.4% 늘었다.

특히 이 가운데 원리금을 갚지 못해 연체로 등록된 대출금은 66억6천만원에서 118억1천만원으로 77.5%나 급증했다.

그러면서 대학생 대출의 연체율이 11.8%에서 14.9%로 3.1%포인트 상승, 전체 대부업체 대출 연체율의 2배를 웃돌았다.

대부업체 대출 원리금 가운데 일부라도 제때 갚지 못하면 개인신용정보평가(CB)사에 신용불량자로 등록된다.

연 40%대의 고금리를 무는 대학생 대출자 약 5만명 가운데 상당수가 신용불량자로 등록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지난해 기획재정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대학생 신용불량자는 지난 2007년 3천785명에서 2008년 1만250명, 2009년 2만2천142명, 2010년 2만6천명 등으로 증가하는 추세로 파악됐다.

불어나는 원리금을 도저히 갚을 길이 없어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개인워크아웃을 상담한 20대 신용불량자는 2005년 이후 올해 6월까지 8만4천227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신용회복위 관계자는 "대학생과 군인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다 보면 뜻밖에 신용관리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초·중·고교 시절부터 신용관리 교육을 체계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금리 대출→신용불량→취업난 악순환
빚을 감당하지 못해 채무재조정을 신청한 이모(24·여)씨는 대학 졸업을 앞둔 2년 전 대부업체 대출을 받았던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남은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대부업체에서 급한 대로 400만원을 빌렸을 때만 해도 취직하면 곧바로 갚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자 이씨는 마지막 학기를 휴학하고 졸업을 1년 늦췄다.

그 사이 원리금은 배 가까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허씨를 받아주는 회사는 없었다.

결국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으로 근근이 원리금을 갚고 있다는 그는 "TV에서 대부업체 광고를 볼 때마다 울화가 치민다"며 "흔쾌히 대출을 승인해줬던 대부업체의 태도가 연체가 쌓이자 180도 돌변했다"고 말했다.

대학생의 대부업체 대출이 늘어난 이면에는 이 같은 대졸자 취업난과 더불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대학 등록금 문제도 한몫한 것 같다는 게 금감원의 분석이다.

학자금 목적의 대부업체 대출은 1년 새 251억5천만원에서 336억8천만원으로 34% 증가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5~2010년 대학과 대학원의 등록금(납입금) 상승률은 30% 안팎으로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2배에 육박했다.

고질적인 채무에 시달리는 대학생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생들이 차환대출(돈을 빌려 다른 대출을 갚는 것) 목적으로 대부업체에서 빌린 돈은 27억9천만원에서 55억5천만원으로 1년 만에 거의 2배로 증가했다.

◇금감원, 대부업계 무차별적 대학생 대출 경고
금감원은 대학생 대출과 연체자가 급증하는 등 문제가 심각해지자 최근 대부업계에 지도공문을 보내 대학생 대출을 최대한 자제하도록 주문했다.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빚 때문에 졸업과 동시에 사회의 `낙오자'로 낙인찍히는 데는 상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대출을 늘린 대부업계의 책임도 있다는 인식에서다.

금감원 관계자는 "꼭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려야 한다면 고금리에 따른 원리금 상환 부담을 충분히 설명하고 부모 등 채무 변제 능력이 있는 보호자의 동의를 전제로 대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출 과정과 사후관리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했다.

상당수 대부업체가 대학생이 대출을 신청하면 관행적으로 주민등록등본을 반드시 제출하도록 하고 있는데, 여기엔 가족관계 정보가 담겨 있어 불법 채권추심에 악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대부업계에 대출신청 서류는 채무 관계자 본인의 인적사항만 확인할 수 있는 주민등록초본을 받도록 했다.

아울러 연체가 발생하면 보증인이 아닌데도 부모나 형제·자매 등에게 대신 빚을 갚도록 독촉하는 행위는 채권공정추심법상 금지된 만큼 불법 채권추심을 하지 말도록 했다.

금감원은 또 대부업체가 대학생 대출 상품을 마치 학자금 대출인 것처럼 허위 광고할 소지가 있다고 보고 대학생 신용대출 금리와 상환 조건 등을 명확히 표시하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홍정규 기자 koman@yna.co.krzhe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