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쿠르에 나가려고 고가 악기를 빌려서 연주해보고,그걸 다시 반납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을 수도 없이 봤어요. 그게 얼마나 짠한지 아마 모르실 겁니다. "

대관령국제음악제를 앞두고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는 음악가들이 느끼는 악기에 대한 갈증을 털어놓으며 "좋은 악기를 지원하는 시스템만 있다면 우리나라 클래식계가 한발짝 더 큰 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음악가에게 악기는 심장이다. 가격을 매길 수 없을 정도의 천문학적 가격으로 거래되는 악기를 개인적으로 구하는 건 엄두도 못낼 일.국내에서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1993년부터 '악기은행'을 운영하며 음악가들의 '악기갈증'을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악기은행은 서류 및 연주 오디션을 통해 기량,나이,체격 등에서 악기와 가장 잘 맞는 연주자를 선정한다. 거주지에 상관없이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기를 꿈꾸는 금호 영재,영아티스트 출신의 젊은 연주자들이면 누구나 오디션을 볼 수 있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연주자에게는 악기를 3년 이상 임대해준다.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엣 강 · 레이첼 리 · 김소옥 · 이유라,첼리스트 고봉인 · 이정란 등이 금호 악기은행을 통해 악기를 임대받아 사용했다. 지금은 피아니스트 손열음,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박지윤 송지원 신현수 진예영,첼리스트 이상은 원민지 등이 이 악기들과 호흡하고 있다.

'악기은행'은 과다니니(Guadagnini),과르네리(Guarneri),몬타냐나(Montagnana),테스토레(Testore) 등 명품 바이올린과 로카(Rocca),마치니(Maggini) 같은 고악기 첼로를 포함,바이올린 12점,비올라 1점,첼로 3점,피아노 6점 등 22점의 악기를 운용하고 있다. 일부 악기는 10억원이 넘는다. 금호문화재단이 이들 명품악기에 지출하는 보험료만 연간 3000만원이 넘는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측은 "2006년 전문가들을 동원해 독일 하노버에 유학 중인 손열음을 위해 고가의 피아노를 분리해 하노버로 공수한 뒤 조립해주기도 했다"며 "악기 지원 사업은 금호가 펼치고 있는 클래식 음악 영재 지원 못지않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