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5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국회의 '저축은행비리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앞두고 벌써부터 걱정스런 얘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여야가 증인 채택 합의에 실패,청문회도 제대로 열지 못했던 2008년 미국산 쇠고기 국정조사와 2002년 공적자금 국정조사의 악몽이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당장 증인 채택을 놓고 여야에서 황당한 주장들이 나온다. 양쪽에서 청문회에 부르겠다는 증인은 11일 기준으로 각각 100여명에 달했다. 민주당이 104명,한나라당이 89명이다. 12일엔 더 늘었다. 하룻밤 사이에 증인 20명이 또다시 추가됐다.

한나라당은 김진표,박지원 의원 등 전 · 현직 민주당 원내대표를 포함해 우제창,박병석,박선숙,박주선,강기정 의원 등 현역 10여명을 증언대에 세우겠다고 벼르고 있다. 민주당은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와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의원,김황식 국무총리,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청와대의 백용호 정책실장과 권재진 민정수석,정진석 전 정무수석,정동기 전 민정수석 등을 증인으로 요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도 증언대에 세우자"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한다.

양쪽은 너무하다 싶었는지 12일부터는 간사들끼리 만나 서로 요구한 증인목록에서 ○,×를 쳐가며 한 명씩 명단에서 지워나가는 작업에 들어갔다. 한 야당 중진의원은 "이런 식이라면 국정조사 결과는 안 봐도 뻔한 비디오"라고 말했다. 되건 안 되건 웬만한 인사들을 증인으로 모조리 요구하고,'물밑 거래'를 통해 상대당의 체면을 세워주는 식의 '알맹이 빠진 청문회'가 될 게 뻔하다는 것이다.

여당 쪽에서는 "이런 청문회라면 사흘씩 할 필요가 있겠느냐.일정을 이틀로 줄이자"는 얘기가 나온다. 민주당도 "제안해오면 검토해봄 직하다"고 맞장구치고 있다.

저축은행 국정조사는 제2,제3의 부실사태를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절차다. 누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 천문학적인 국민 세금을 저축은행 부실에 투입해야 하는지 명백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저축은행 사태에는 수많은 정치인들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이 증인채택 문제를 둘러싼 정치공방으로 허송세월하다가 지난번 쇠고기,공적자금 국정조사 때처럼 어물쩍 넘어가려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허란 정치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