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그룹의 기업광고 '기본이 혁신이다'편은 '올빼미 촬영'으로 만들어졌다. 대부분의 촬영 스케줄이 늦은 밤 아니면 동이 틀 무렵의 새벽녘에 잡혔다. 특히 여천 석유화학 플랜트,이순신 대교,e편한세상 건설 현장 등은 각기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한 편의 광고로 보면 30초밖에 안 되지만 제각각 떨어져 있는 현장을 동이 트기 전 짧은 시간에 촬영하다 보니 제작 기간이 다른 광고물에 비해 몇 배나 길었다.

광고 한 편을 찍는 데는 길어도 이틀이면 충분하다. 매일 새벽 한 컷 정도 촬영해야 했던 대림그룹의 광고는 1주일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만큼 많은 정성이 실렸다. 보통 광고의 두 배인 30초 광고물의 처음부터 끝까지 카피와 비주얼이 절묘하게 어울린 광고가 탄생한 배경이다.

비주얼과 카피뿐만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도 광고 성공에 한몫했다. 모두가 '혁신'을 외쳤다. 사실 '혁신'은 수십 년간 우리나라 기업 대부분이 추구해온 기업 가치이자 정신이었다.

어떤 기업은 와이프만 빼고는 모두 바꾸라며 '변화를 통한 혁신'을 주문했다. 어떤 기업은 '속도'가 관건이라며 '스피드를 통한 혁신'을 노래했다. '글로벌 경쟁력을 통한 혁신'을 주장하며 사내 모든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영어로 바꾸려는 시도도 있었다. 사회 전반적으로 '혁신'이라는 말에 피로감을 느낄 정도로 혁신 구호가 넘쳤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혁신'에 이르는 '방법'이었다.

기본에 충실하지 않고 혁신만 앞세웠던 수많은 시도들이 실패로 돌아간 까닭이다. 해외에서도 그랬다. 엄청난 부를 창출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다 추악한 도덕적 해이로 충격을 준 엔론사태 이후,기업들이 '정의'를 재조명하는 분위기가 뚜렷했다. 이때 혁신의 근간이 '기본을 지키는 것'에 있다는 대림의 메시지는 그동안 대림이 걸어온 길을 설명하기에 '가장 잘 맞는 옷'이면서 우리 사회의 새로운 화두로서 역할을 했다.

광고가 전파를 탄 뒤 여러 뉴스칼럼에 '기본이 혁신이다'란 슬로건이 인용됐다. 인터넷에는 이 광고물을 이용해 만든 UCC 동영상이 올라오는 등 사회적 파장이 컸다. 대림은 비주얼 광고 너머를 생각하고 있다. 광고를 통해 표현한 기업 철학을 사회 저변으로 확산시키는 캠페인을 준비 중이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