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찐 고양이'라고 욕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선거자금을 내라고?"

내년 대선에서 연임을 노리는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 캠프가 엄격한 금융개혁으로 성난 월가의 마음을 돌릴 방안을 찾느라 고심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개혁의 당위성을 홍보하기 위해서는 월가의 `탐욕'을 비난하면서 이들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이 불가피했지만, 이제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는 월가 금융권이 기부하는 풍부한 실탄(선거자금)이 아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월가의 대형 헤지펀드나 금융회사 임원 중 상당수가 공화당 지지로 돌아선 상태여서 백악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13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이달 중 뉴욕을 방문,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유명한 식당 대니얼에서 금융회사 및 헤지펀드 임원 등 월가의 큰 손들을 만나 지지와 선거자금 기부를 호소할 예정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자금 모금에 관여하고 있는 투자 은행가 블래어 에프론은 "(방문의) 첫 번째 목적은 정부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던 경제를 현재 상황까지 이끌어왔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며 "두 번째 목적은 그런 인식을 지지로 연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 출마 선언 몇 주일 전에 월가의 임원 수 십명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경기 회복과 재정 적자 감축 방안에 대한 의견을 물으며 월가 달래기에 나선 적이 있다.

지난달에는 오바마 선거대책본부의 짐 메시나가 뉴욕에서 월가의 임원들과 연쇄 회동을 갖고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오바마 측은 특히 지난 2008년 선거 때 민주당 내 경선 라이벌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던 월가 사람들을 지지자로 끌어들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위기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월가에 대한 비난과 강력한 금융개혁 추진에 불만을 품은 월가의 큰 손 중 상당수는 민주당과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지지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를 노려 공화당 대선후보 중 한 명인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벤처캐피털회사의 임원을 지냈던 경력을 내세우며 민주당에 등 돌린 월가의 지지를 가로채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월가 금융회사의 한 임원은 이달 중 있을 오바마 대통령의 맨해튼 방문 식사때 초청을 받았지만 거절했다면서 "월가 임원을 `살찐 고양이'라고 비난했던 대통령이 1인당 195달러짜리 코스요리가 있는 식당에 그들을 초청하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뉴욕연합뉴스) 김지훈 특파원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