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법사상 첫 해적재판이 23일 오전 부산지법 301호 대법정에서 시작돼 눈길을 끌었다.

부산지법 형사합의5부(김진석 부장판사)는 이번 재판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고려,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했다가 우리 군에 생포된 해적 5명 가운데 국민참여재판을 거부한 압둘라 후세인 마하무드를 제외한 4명이 수의를 입은 채 법정에 앉은 모습을 언론매체가 촬영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 피고인 촬영 30초간 허용 =
0..재판부는 23일 오전 11시46분께부터 30초간 피고인들이 법정에 미결수용 국방색 수의를 입은 채 교도관들 사이에 앉아 있는 모습을 언론매체가 촬영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피고인들의 의사를 반영해 옆 모습이나 뒷모습 또는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원거리 촬영만 허가했다.

또 테러 가능성을 우려해 재판부와 검사, 배심원단, 통역요원 4명은 앵글에 잡히지 않도록 했고, 만 19세가 안돼 소년으로 분류되는 아울 브랄랫(18세 11개월)은 모자이크 처리하도록 했다.

해적들은 긴장한 듯 시종 입을 꼭 다물고 얼굴을 정면으로 향한 채 간간이 옆눈으로 카메라나 방청석을 지켜봤고, 특히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정면만 바라봤다.

하지만 해적들은 볼이 통통해지는 등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고, 강력사건 피고인들과는 달리 수갑이나 포승을 하지 않고 법정에 나왔다.

= 창과 방패도 '막강' =
0..사상 첫 해적재판을 맡은 검찰과 변호인도 막강했다.

검찰에서는 부산지검 공안부(최인호 부장검사)의 김성동 수석검사와 이정렬, 노선균 검사가 나섰다.

검찰은 해적들의 진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까지 정확하게 간파하는 등 '막강한 화력'을 자랑한다.

해적들의 방어권을 보장할 국선 변호인도 중량감 있는 인사들로 배치됐다.

부산지법 부장판사 출신인 윤근수, 한기춘 변호사와 동아대 로스쿨 겸임교수인 정해영 변호사, 미국 위스콘신대 로스쿨을 수료한 법무법인 정동국제의 김성수 변호사가 발탁됐다.

특히 석해균 선장에게 총을 난사한 혐의를 받는 마호메드 아라이의 변호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으로 인권 변호사로 널리 알려진 법무법인 부산의 권혁근 변호사가 맡았다.

= 배심원 수도 사상 최다 =
0..2008년 시행된 국민참여재판은 그동안 보통 하루 만에, 길어야 이틀 만에 끝났지만 이번에는 5일간 열린다.

이 때문에 유.무죄를 판단해 재판부에 형량을 권고하는 배심원수도 사상 최다인 12명으로 구성됐다.

이번 사건의 법정형이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해당해 정식 배심원만 9명이고, 장기 레이스에 대비해 예비 배심원 3명을 선임한 것.
재판부는 5일간이나 진행되는 재판에 계속 참여할 수 있으면서도 불편부당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배심원을 고르기 위해 부산시민 500명에게 배심원 후보로 통지했고, 이날 출석한 110여명 가운데 12명을 엄선하는 과정을 거쳤다.

배심원 가운데 여성이 7명으로 다수를 차지했고, 남성은 5명이었다.

배심원 후보도 많은데다 변호인 측이 기피신청을 많이 하는 바람에 당초 예정보다 30분가량 늦어졌고, 이 때문에 재판시작도 오전 11시40분께로 순연됐다.

= 50여개 내외신 취재경쟁, 방청석 가득 메워 =
0..국내 첫 해적재판에 내외신의 관심도 뜨거웠다.

국내 주요 언론사가 모두 취재에 나섰고, 해외에서도 AP와 AFP, 로이터, 블룸버그 등 세계적인 통신사와 일본 아사히 신문 등이 취재진으로 등록했으며 '아랍의 CNN'으로 불리는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도 특파원과 카메라 기자, 방송 PD를 파견해 치열한 취재경쟁을 벌였다.

국내 방송 3사와 YTN도 부산법원에 중계차를 설치하고, 시간대별로 재판소식을 보도했다.

해적재판을 직접 보려는 일반인도 많아 86개 방청석을 가득 메웠고, 재판부는 법정내 소란을 방지하기 위해 방청권을 선착순 배부했다.

오전 7시께 방청권을 제일 먼저 받은 대학생 김유나(26.여)씨는 "사상 첫 해적재판에 대한 관심도 많았고, 배심원의 결정이 재판부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도 궁금해서 방청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원 근처에 산다는 염모(65.여)씨도 "우리나라 선원들을 납치했던 해적들의 얼굴을 직접 보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최진갑 부산고법원장과 박흥대 부산지법원장, 박효관 부산지법 수석부장판사 등도 방청석에서 재판진행과정을 지켜봤다.

= 테러 대비 보안 대폭 강화 =
0..부산지법은 사상 첫 해적재판에 대한 테러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보안을 대폭 강화했다.

301호 법정 앞에 별도의 검색대를 설치해 일반 방청객은 물론 취재진의 소지품도 일일이 검사했고, 법정내 피고인석과 변호인석도 분리했다.

부산지법은 또 경찰에 지원을 요청, 해적재판이 열리는 기간에 1개 중대 경력을 청사 주위에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로 했다.

언론매체에 피고인들의 입정장면 촬영을 허용하면서도 재판부와 검사, 배심원단은 앵글에 잡히지 않도록 하고, 만 19세가 안돼 소년으로 분류되는 아울 브랄랫(18세 11개월)의 얼굴이 노출되지 않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부산연합뉴스) 민영규 기자 youngky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