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구입을 대가로 업자가 감독, 코치, 협회간부 등에게 건넨 금품비리가 불거지면서 세계 최강 한국 양궁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

12일 부산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적발된 양궁 장비제조업자와 감독, 코치, 선수간 금품비리 유착의 심각성은 전국의 86개 초·중·고·대학과 실업팀이 연루될 정도로 광범위하고 관행화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양궁선수 출신인 백모씨(36.구속)는 2004년 9월부터 양궁 장비 제조업체를 운영하면서 국가대표선수 출신인 한모씨(36)를 영업부장으로 영입했다.

한씨의 직함은 영업부장이었지만 주로 로비스트 역할을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백씨가 운영한 회사는 경기도 본사와 중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한 활과 소모품인 화살, 날개, 크리커, 완충기, 조준기, 표적지 등을 전국 140개 양궁팀에 공급하고 해외 18개국에 수출했다.

백씨는 영업과정에서 장비를 구입해주면 금품을 제공하겠다고 접근해 '장비깡치기'와 리베이트를 주는 수법으로 전국 86개 학교 및 실업팀의 감독과 코치, 선수들에게 돈을 건넸다.

백씨는 지금까지 장비깡치기로 3억8000만원, 리베이트로 1억4000만원 등 모두 5억2000여만원을 감독, 코치, 선수, 협회관계자 등 135명에게 많게는 최고 8200여만원을, 적게는 10만원을 제공했다.

장비깡치기는 번호를 부여해 특별관리하고 있는 고가장비인 활은 제외하고 관리가 허술한 화살, 표적지 등 소모품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장비깡은 장비공급업체와 감독, 코치 등이 짜고 수량이 부풀려진 허위견적서를 물품과 함께 배달한 뒤 해당 학교에서 물품 검수가 끝나면 일부를 반품하고 반품한 액수만큼의 돈을 감독과 코치들에게 입금시켜 주는 수법으로 이뤄진다.

양궁 소모품은 주로 감독과 코치들이 관리를 맡아왔기 때문에 해당 학교는 장비구입비가 수년간 새고 있는데도 알지 못했다.

백씨는 물품 검수가 강화돼 장비깡치기가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견적서 가격을 부풀려 판매대금의 10%를 리베이트로 주는 수법을 이용했다.

이 같은 수법으로 모 군청 양궁팀 감독 김모씨(37)는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11회에 걸쳐 모두 5240만원을 챙겼다.

구속된 부산시양궁협회 간부 이모씨(45)는 선수 훈련비와 출전여비는 물론 양궁팀에 입단예정인 선수 스카우트비(우수 양궁선수 확보 차원에서 선수 영입시 지급하는 자치단체 보조금)와 장학금(매월 30만원씩 우수 선수에게 지급)도 수시로 횡령, 2006년 8월부터 지금까지 착복한 돈이 7600여만원에 달했다.

백씨에게서 장비구입 대가로 돈을 받은 피의자 중에는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방콕과 부산아시안 게임 금메달 2관왕 등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 5명을 포함, 전.현직 국가대표 선수와 감독 9명이 포함돼 있어 충격을 던져 주었다.

또 해외파견 코치 2명도 입건됐고, 양궁협회에 지급되는 보조금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한 부산시청 직원 3명 등 공무원 10여명도 기관통보되기도 했다.

경찰은 백씨가 전국의 양궁팀 감독과 코치들에게 장비구입을 대가로 무차별적으로 오랜 기간 금품을 건넨 이 같은 모럴헤저드(도덕적 해이)에는 양궁계가 어떤 스포츠 종목보다도 선수 출신 선·후배 인맥이 견고하고 폐쇄적인 구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상당수 피의자들은 자신의 범죄행위를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입건된 피의자 중에는 "인사치레 정도로 돈을 받은 적이 있을 수 있지만, 장비구입 대가를 전제로 돈을 받는 적은 없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궁계에서는 "그동안 관행처럼 굳어온 장비업자와 감독간의 일부 금품거래 비리가 결국 터지고 말았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세계적 위상에 걸맞게 한국 양궁의 내부 개혁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경닷컴 경제팀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