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돈? 전혀 관심 없어요.(두 손으로 ‘엑스’자를 그리며) 관심있는 것은 오로지 연기예요.”




햇살이 잘 드는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정려원(30)을 만났다. 그녀는 아직도 꿈을 꾸는 듯 했다. 영화 ‘적과의 동침’에서 희망을 봤다.

지난 27일 정려원, 김주혁, 유해진 주연의 영화 ‘적과의 동침’이 마침내 관객몰이에 나섰다. 영화는 1950년대 한국전쟁 당시 평화로운 석정리 마을에 찾아온 인민군 부대와 마을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다.



'적과의 동침'에서 당찬 신여성 '설희' 역을 맡은 정려원은 연일 계속되는 영화 홍보 일정에도 전혀 지친 모습이 아니다. 그녀는 영화 얘기가 나오자 회갈빛 눈동자를 반짝인다.


“개봉 직후부터 인터뷰의 연속이었어요. 아직 대중 반응이 어떤지 실감을 못했는데... 어떤가요?”


한국의 대표적 패셔니스타, 빈틈없이 반짝이는 정려원에게 물었다. 전시 상황을 표현해야 하는 영화의 특성상 기존 이미지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냐고.



“영화 촬영을 하는 동안 얼굴에 흙칠 좀 했죠. 한복도 입었구요. ‘몸빼 패션’ 이라고 해야하나요? 패셔니스타라면 이 정도는 소화해야죠. (웃음)”



대중들은 그녀를 ‘차도녀’(차가운 도시의 여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정려원은 이에 대해 당돌하게 반박했다.


“그건 지금까지 제가 맡아왔던 역할때문일 거예요. 굳이 말하자면 저는 ‘따도녀’(따뜻한 도시의 여자)인데...”라며 배시시 웃어보였다.


여배우의 입에서 ‘삽질’ 이라는 단어가 불쑥 튀어나왔다. “혹시 삽질 해 보셨나요?"

“지난해 방공호 파느라 죽을 뻔 했어요. 배우, 스태프 모두가 하나가 돼 파 나가는데 자꾸 비가오는 거예요. 무너지면 또 파고, 자리 옮겨서 다시 파고... 손에 가시가 다 박혔다니까요. 나중엔 감독님에게 영화 제목을 ‘삽과의 동침’으로 바꾸자고 했다니까요.”

‘방공호’는 영화의 내러티브를 이끄는 주요 소재다. 인민군과 석정리 주민 그리고 정웅(김주혁 분)과 설희의 진정한 소통이 시작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방공호’를 통해 소통한 것은, 영화 속 인물들만이 아니었다. 정려원은 성장했다. 다른 배우, 스태프들과 하나가 됐다.

“촬영 중 김주혁 선배와 전 잠수함 같이 가라앉아 있었고, 다른 분들은 돛단배 같이 떠있었어요. 비극을 희극으로 포장한 휴먼 드라마 인데 어느 쪽으로든 치우치지 않게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사람을 관찰하고 상담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정려원은 '사람'의 진정한 아픔을 연기하고 싶단다. 정려원은 이제 영화 '적과의 동침'의 설희를 보냈다. 영화 '통증'의 동현을 만났기 때문이다.




한경닷컴 김예랑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