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핫머니(투기자본) 유출입을 규제하는 '자본통제(capital control)'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그동안 반대해오던 자본통제를 정책 수단의 하나로 인정했다. 수십년 동안 견지해온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원칙을 조건부로 포기한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분석했다.

IMF는 5일 웹사이트를 통해 "각국이 대규모 자본 유입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프레임워크(가이드라인)를 개발해 이사회의 승인 절차를 진행 중"이라며 "지난해까지 자본통제는 정책 수단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여러 정책 수단 중 하나"라고 밝혔다.

IMF의 가이드라인은 각국이 자국 통화가 평가절하돼 있지 않고 충분한 외환보유액을 축적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통화 · 재정정책 등 다른 마땅한 정책이 없으면 자본을 통제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국내 은행의 해외 통화 차입을 제한하는 등 해외 자본을 국내 자본과 차별하면 안 된다는 단서를 붙였다. 이 지침은 11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논의할 핫머니 규제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자본통제란 국내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단기 투기성 자본의 유출입을 규제하는 것을 말한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가 IMF의 자본 자유화 처방을 거부하고 자본 유출입을 엄격히 규제한 것이 대표적이다. 말레이시아를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은 당시 해외 자본의 급격한 유출로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IMF는 이후에도 자본통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2008년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IMF가 입장을 바꾸는 현실적인 계기가 됐다. 선진국에서는 '초저금리'가 지속된 반면 신흥국 시장에서는 금리가 높아져 상당 규모의 핫머니가 신흥국으로 흘러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자본 유입은 신흥국들의 통화 가치 절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주식 · 부동산 등 자산 버블을 만들고 인플레이션을 야기하고 있다. 특히 신흥국들은 유입됐던 자본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금융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이에 따라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자본 이동을 규제하는 정책을 잇따라 도입하고 있다. 브라질은 달러화 유입이 급증하자 금융회사와 기업이 외국으로부터 차입하는 달러화에 대한 금융거래세를 6.38%로 올릴 계획이다. 한국에서도 은행의 비예금 외화부채에 거시건전성 부담금(은행세)을 부과하는 내용의 외국환거래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다. 태국은 지난해 10월부터 태국 국채 등에 투자한 외국인의 이자소득 및 자본소득에 15%를 과세하고 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는 "IMF는 자본통제에 대해 매우 실용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며 "이런 수단들이 옳은 경제정책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필요한 경우 한시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IMF에 이어 아시아개발은행(ADB)도 6일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해 자본 규제 등 다양한 정책 도구를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브라질 등은 IMF의 자본통제 용인으로 오히려 신흥국의 핫머니 규제 정책에 대한 IMF의 간섭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