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관리하려다 기업들만 잡을 것 같습니다…."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물가억제 정책에 산업 현장 곳곳에서 하소연이 터져나오고 있다. 정부와 기업,소비자들 간에 '인플레 갈등'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소비재 기업을 겨냥한 정부의 무차별적인 가격 인하 압박이 소재 · 부품기업과 완제품 기업 사이의 원가 떠넘기기 갈등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기업과 소비자 간 반목을 부추기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SK에너지의 ℓ당 100원 할인에 맞서 에쓰오일은 5일 주유소 공급가를 100원 낮추는 고육책까지 내놨다.

포스코vs조선업계 철강값 다툼

한국조선협회는 국내 최대 철강사인 포스코에 후판(선박 건조용 강재) 가격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형 조선업체들이 협회를 통해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조선협회는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STX조선해양 등 대형 조선업체 9개사가 회원사로 있다. 협회는 "선박 가격이 아직 평상시의 70% 수준도 회복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동반성장의 관점에서 전 · 후방산업이 서로 '윈윈'할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포스코는 최소한의 후판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 측은 조선협회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철광석,유연탄 등 원료값이 25~35%가량 올라 철강제품 가격에 원료값 인상분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며 "특히 열연강판 냉연강판 선재 등 다른 제품과의 형평성 차원에서도 후판 가격을 별도로 분리해 처리하기는 어렵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는 이르면 이달 초부터 열연강판 냉연강판 후판 등 주요 철강제품 가격 인상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가격 인상 발표 시점을 계속 미루면서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100원 인하' 담합 내몰린 정유업계

지난 1월13일 "기름값이 묘하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시작된 정부의 유가 인하 압박에 정유사들이 잇달아 손을 들고 있다. 업계 1위인 SK에너지가 카드로 결제할 때 소비자에게 직접 ℓ당 100원을 돌려주기로 한데 이어 에쓰오일은 주유소 공급가격을 100원씩 내리기로 했다.

정유사 관계자는 "포인트 제도가 잘 돼 있는 SK,GS와 달리 에쓰오일 입장에선 주유소 공급가 인하 외엔 뾰족한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며 "현대오일뱅크도 같은 방식을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드 할인 방식을 적용하기로 한 SK에너지와 주유소 공급가 인하 방식을 택한 에쓰오일은 서로 비난하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공급가 인하 방식은 정유사에서 주유소에 넘기는 석유제품 가격을 100원씩 내리게 되지만 정작 해당 주유소에서 이를 그대로 소비자 가격에 반영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게 SK 측 주장이다. 다른 정유사 폴(간판)을 달고 있는 주유소들이 공급가가 ℓ당 100원 싼 에쓰오일 기름을 받아 쓰려는 유혹을 느낄 수도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에쓰오일은 "SK처럼 자기 폴 주유소에서만 신용카드 할인을 해주면 경쟁 관계인 자가 폴이나 무폴 주유소는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통신료 인하엔 통신사 · 제조사 갈등

공정위가 촉발시킨 통신 요금 논란에는 소비자단체들까지 끼어들었다. 공정위는 휴대폰 보조금을 둘러싼 불공정거래를 문제 삼았고 소비자단체들은 비싼 휴대폰 단말기 가격뿐 아니라 요금제도 자체의 변경까지 요구하고 있다. 소비자단체들은 지나치게 높은 통신비 원인으로 제조사들의 비싼 단말기 출고가와 통신사들의 일방적인 정액요금제를 꼽고 있다. 이 와중에 단말기 제조업체와 통신사들은 책임 떠넘기기 공방을 벌이면서 업계간 갈등의 골만 깊어지고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체감 효과는 거의 없는 반면 기업은 엄청난 타격을 입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창민/임원기/조재희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