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만 모인다는 카이스트.올 들어서만 학생 3명이 자살하면서 이 학교의 징벌적 학사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카이스트 재학생들은 평점 3.0에서 0.01점이 낮아질 때마다 약 6만원을 다음 학기 시작 전에 내야 한다. 2.0 미만의 평점자에 대해서는 최대치인 600만원의 수업료가 부과된다.

대한민국은 지금 '리얼 서바이벌' 공화국이다. TV프로그램에서는 아나운서,예비 가수,디자이너,기성 가수까지 1등을 가리기 위해 경쟁한다. '대학에 가면,취직 하면,결혼하면'이라는 가정법을 붙여가며 지금의 행복을 유예하는 한국인에게 경쟁은 일상이 됐다.

《곡선이 이긴다》의 두 저자는 "행복해 보이고 싶습니까? 행복해지고 싶습니까?"라고 질문한다. 우리들의 맹목적 질주 본능을 질타하면서 행복을 위한 구체적 대안으로 '곡선'을 제시한다. 곡선이야말로 최적화,속도전,성과주의로 상징되는 '직선'의 갑갑함을 벗어날 수 있는 가치라는 것.

저자는 직선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심리학 의존 신드롬'을 근거로 들었다. 내가 누구인지,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물을 틈도 없이 객관식 문제 안에서 달리다 보니 삶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처할 능력을 잃고,인생의 고비마다 심리학에 자신의 삶을 묻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또 우리가 곡선의 삶을 살 때 비로소 일도 놀이가 된다고 역설한다. 삶의 본질을 오르막,내리막,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롤러코스터 같은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60여권의 책을 펴낸 유영만 교수는 '공고생 출신 대학교수'라는 남의 시선을 극복하기 위해 한때 질주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시속 140㎞로 고속도로를 달리다 교통사고를 당해 중태에 빠졌다. 죽음의 문턱을 다녀오고도 병상에 누워 치료받는 시간조차 아깝다고 생각하던 그는 어느날 시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고두현 시인의 시 《늦게온 소포》를 읽고 감동받은 게 계기였다.

이 책에 절묘한 곡선과 여백을 만들어내는 건 각 장에 숨어 있는 시와 해설이다. 《직립》 《거룩한 상처》 《죽순의 힘》 등 고두현 시인의 신작 시 5편도 만날 수 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