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무원ㆍ주유소ㆍ브로커 `쿠폰 위조' 1천억원 탈세
7명 구속…`수사권 사각지대' SOFA 악용 대책 시급

1억ℓ가 넘는 엄청난 양의 면세유 구매증서(쿠폰)를 꾸며 1천여억원의 부당 이득을 챙긴 주한미군 군무원과 주유소 업자, 입찰 브로커 등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는 23일 면세유 쿠폰을 위조, 환급분으로 받은 석유를 주유소에 내다 판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로 주한미군 군무원 박모(71)씨와 한국인 군무원 노조 간부 지모(57)씨, 주유소 업자 고모(53)씨 등 7명을 구속하고 입찰 브로커 이모(54)씨 등 9명을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01년 8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쿠폰을 허위로 발행하거나 공급량 등을 바꿔 적어 면세유 쿠폰 1천323장(1억7천만ℓ 상당)을 위조한 뒤 세금 환급분으로 받은 경유와 휘발유를 일반 주유소 등에 팔아넘기는 수법으로 세금 1천172억여원을 탈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이 범행에 사용한 면세유 쿠폰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미군이 건설공사 등을 계약한 업체에 발급하는 것으로 정유사는 관할 세무서에 쿠폰을 내고 세금을 면제 받은 뒤 환급금만큼 석유를 주유소에 돌려주게 돼 있다.

조사결과 지씨 등은 범행을 위해 아예 주유소를 여러 개 차려놓고 정유사에서 넘겨받은 석유를 다른 주유소에 시가보다 150~200원 싸게 넘겨 현금화하고서 돈을 나눠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담당 군무원들은 계약업체와는 무관하게 쿠폰 용지에 수만~수십만ℓ에 달하는 수량을 임의로 적어 내는 수법을 주로 썼고 주유소 업자들은 정상적으로 발행된 쿠폰의 기재 사항을 특수약품으로 지우고 공급량을 부풀려 위조한 것으로 조사됐다.

브로커 이씨는 주한미군계약사령부(CCK) 군무원과의 친분을 이용해 수량을 늘리거나 유효기간이 만료된 쿠폰의 발행 날짜를 고쳐 주유소에 넘기고 현금과 맞바꾸기도 했다.

이들은 세무당국이 주한미군에게서 받는 구매 사전통보서와 정유사가 제출하는 면세유 쿠폰에 적힌 공급량 등을 철저히 대조하지 않는 허점을 악용, 10년 가까이 위조된 쿠폰을 유통시켰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주한미군이 발주하는 공사 관련 입찰을 대행해 주고 면세유 쿠폰을 가로채는 브로커가 있다는 첩보를 토대로 쿠폰의 유통 과정을 추적하다가 위조된 쿠폰이 대량으로 유통된 정황을 포착하고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국방부 감찰실, 국세청 등과 공조 수사를 벌인 끝에 이들을 붙잡았다.

경찰 관계자는 "주한미군 내에서 발생한 범죄에 우리나라의 수사권이 미치기 어려웠던데다 감독 책임자가 자주 바뀌는 군의 특성상 미군 자체적으로 비리를 적발하기 어려워 이들이 두 나라 사법권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었다"며 "미군과 국세청, 정유사 측에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te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