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과 일본 후쿠오카 하카다항을 오가는 페리여객선사인 고려훼리의 정수경 씨(27)는 요즘 일본 현지에서 걸려오는 예약 전화를 받느라 부쩍 바빠졌다. 평소 한 통화도 받기 힘든 재일교포나 일본 주재원, 일본 거주 외국인들의 문의전화가 하루에 30여통씩 걸려오기 때문이다.

정씨는 "원전사고 소식이 알려지면서 일본에서 오는 한국행 뱃길 문의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방사선 쇼크'에 휩싸인 일본 열도를 벗어나려는 엑소더스 행렬이 한 · 일 간 고속선(페리)으로 몰리고 있다. 페리를 이용하는 승객 대부분은 왕복티켓 대신 편도티켓을 끊어 일본을 탈출하려는 행렬이다.

18일 부산과 후쿠오카 노선을 운항하는 부관훼리,고려훼리,미래고속 등 페리선사들에 따르면 지난 11일 일본지진 이후 일본으로 가는 한국인 단체관광객 수는 거의 끊겼지만 일본에서 한국으로 나오는 승객은 평소보다 3~4배 늘고 있다.

부관훼리의 '성희호'는 전날 오후 7시 시모노세키항을 출발해 180명의 손님을 태우고 이날 오전 8시 부산항에 도착했다. 전체 승객 가운데 한국인은 90명이었다. 평소보다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17일에도 160명이 일본에서 나왔다. 승객 가운데 절반이 한국인이었다. 이 배의 정원은 562명이며 1등실 요금은 12만5000원이다.

부관훼리 여객팀 관계자는 "'3 · 11 일본지진' 이후 일본으로 가는 단체관광객이 없었고 배를 이용하는 승객들 중 상당수가 편도로 온 점을 감안하면 방사능 오염 위험을 피해 한국으로 온 사람들로 보인다"고 말했다.

역시 부산과 하카다항을 왕복하는 고려훼리도 요즘 빈배로 갔다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는 편도 손님을 태우고 있다. 이번주 단체관광객은 모두 취소됐다. 하지만 이날 오후 6시에 부산항에 도착한 고려훼리 소속 뉴카멜리아호에는 231명이 탑승했다. 19일에는 400여명이 예약돼 있다.

정씨는 "일본 명절이 낀 주말을 이용해 일본 관광객들도 오지만 한국인이나 일본거주 외국인들은 대지진 이후 돌아갈 일정을 잡지 않고 배를 탄다"며 "이런 사례는 극히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시모노세키항에서 부산항을 오가는 고속선 코비호를 운영하는 미래고속도 일본에서의 탑승률이 80%를 넘어섰다. 이 회사의 선박은 45노트의 속도로 한국과 일본을 3시간 만에 주파한다. 선박 정원은 200명.

한 · 일 페리노선은 일본으로 구호물자를 보내는 수송 루트로도 활용되고 있다. 오사카와 부산항을 오가는 ㈜팬스타라인닷컴의 산스타드림호는 이날 생수 10만병, 담요,식음료 등 구호물자를 컨테이너 350개에 싣고 쓰루가항으로 향했다. 복잡한 하늘길을 피해 저렴하면서 하루 정도면 부산에서 일본으로 대량의 화물을 실어나를 수 있기 때문이다.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