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중간·마무리 보직 아직 '안갯속'

일본 오키나와현 이시카와 야구장에 차려진 프로야구 LG 트윈스 스프링캠프에서는 투수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경쟁이 진행 중이다.

미국프로야구에서 뛰었던 레다메스 리즈(28)와 벤저민 주키치(29)만 선발 투수로 내정됐을 뿐 나머지 투수들은 올해 어떤 보직을 맡을지 모른다.

박종훈 LG 감독은 18일 "여러 시나리오를 구상 중"이라며 "보직은 정규 시즌 전에서야 결정날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 윤곽은 지난해와 비슷하나 변수가 많아 박 감독은 구상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보통 이맘때 감독은 투수들에게 올해 보직을 알려주고 그에 맞춰 정규 시즌을 준비하도록 한다.

선발투수는 한계투구 수인 100개 이상을 던지도록 어깨를 단련하고 매일 불펜에서 대기해야 하는 중간 계투와 마무리 투수들은 한 시즌을 견뎌낼 수 있도록 체력을 키운다.

연습경기와 시범경기에서는 정해진 보직에 따라 마운드를 운용하고 몇몇 선수만 교체하는 수준에서 정규 시즌 개막을 맞는 게 일반적이다.

박 감독도 이런 '상식'을 잘 알지만 LG 마운드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라는 판단에 따라 끝까지 무한경쟁을 유도하기로 했다.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끝으로 LG는 지난해까지 8년간 '가을잔치'에 초대받지 못했다.

마운드가 약한 게 결정적이었다.

한 시즌 15승을 올려줄 만한 에이스도 없었고 불펜진도 경쟁팀보다 기량이 떨어졌다.

승리를 확실하게 지켜줄 만한 수호신도 없었다.

총체적인 난국이 수년째 되풀이됐다.

지난해에도 팀 평균자책점은 5.23으로 치솟아 7위에 머물렀다.

봉중근(31)만이 두자릿수 승리(10승)를 거뒀고 5승을 넘은 선발투수는 김광삼(7승)까지 두 명에 불과했다.

심각한 문제점을 직시한 박 감독은 지난해 마무리 훈련부터 투수들을 혹독하게 던지게 했다.

1월부터 센 투구 수를 보면 신정락과 서승화가 2천400~2천500개로 1, 2위를 달렸고 한희, 김선규, 박현준 등 젊은 피도 2천 개를 훌쩍 넘겼다.

왼손 투수 서승화는 마무리 훈련까지 합쳐 투구 수 4천 개를 가볍게 돌파했다.

나머지 투수들도 내달 초 스프링캠프가 끝나면 2천 개는 던질 것으로 예상된다.

LG 관계자는 "봉중근, 김광삼, 심수창, 박현준, 임찬규 등이 선발 후보로 꼽힌다"며 "이들 중 탈락하는 선수가 불펜에서 던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어 "왼손 이상열과 김선규, 김광수, 이동현 등이 중간 계투로 나설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동현은 발목 통증 탓에 스프링캠프에서 100여 개 밖에 던지지 않았지만 마무리로 뛰었던 경험이 있어 계투 요원으로 중용될 것으로 평가받는다.

가장 관심이 쏠린 마무리 후보로는 시속 150㎞의 강속구를 뿌리는 김광수와 더불어 두둑한 배짱과 경험이 돋보이는 봉중근이 물망에 올라 있다.

봉중근은 선발진이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전격적으로 소방수로 돌아설 공산이 크다.

(이시카와<日 오키나와현>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cany99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