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께 국무부에 대북정책 헤게모니 빼앗겨
"한국 이라크 파병논란 '역사적 기억상실증' 사례"

조지 부시 행정부 당시 강경파였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외교적, 경제적 대북 압박을 통해 북한내 군부의 김정일 체제 전복 유도를 구상했었다고 밝혔다.

럼즈펠드 장관은 그러나 2006년 이후 부시 정부 말기로 접어들면서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국방부가 관여할 통로가 봉쇄되고 국무부 협상론자의 전유물이 됐다고 회고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8일 시판된 회고록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Known and Unknown)에서 2002년 북한 당국의 우라늄농축 주장으로 비롯된 2차 핵위기 이후 자신의 대북정책에 대한 기본 철학을 밝혔다.

그는 북한의 미사일발사, 국지 도발, 핵무기개발 등 북한의 도발을 겪으면서 당시 국가안보회의(NSC) 참석자들에 게 보낸 메모를 인용하며 "우리는 김정일이 바라는 이목집중을 계속 거부해야 한다. 북한의 도발적 행동에 호응하는데 익숙해졌지만 우리가 협상에 임하는 것은 북한이 노리는 전리품"이라며 당시 자신의 입장을 전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특히 "김정일이 권력을 잡고 있는 한 북한 체제가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며 "김정일 체제가 권력을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 핵무기 추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김정일이 중국을 후원자로 두고 있는 한 6자회담으로 대표되는 중국이 포함된 북한과의 협상이 성공할 것으로 낙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북한에 경제적 지원, 난방유 원조 등 유인책을 제공하기보다는,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북한에 외교적, 경제적 압박을 강력하게 펼치면 북한 군부의 고위장성 일부가 김정일 체제를 전복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럼즈펠드 장관은 그러나 "2006년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6자회담 대표인 크리스토퍼 힐은 북한은 오로지 국무부의 이슈이며, 국방부의 관점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대북정책의 헤게모니를 국무부에 빼앗겼다고 토로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라이스 장관과 힐 대표는 대량살상무기(WMD)를 종식시키는 북한과의 합의가 가능하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정보국(CIA)에서 베테랑 지역전문가로 경험을 쌓은 리처드 롤리스 국방부 아태담당 부차관은 논의과정에서 배제됐다"고 말했다.

롤리스 부차관은 부시 정부 당시 국방부에서 한반도정책을 재단한 `럼즈펠드계' 강경파 인물이었다.

한편 럼즈펠드 장관은 2003년 11월 방한 당시 한국내에서 일었던 이라크 파병 논란을 회고하면서 '50여년전 미군의 참전으로 자유와 경제적 성공을 일군 한국'의 "역사적 기억상실증(historical amnesia)"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그는 자신의 국방부 집무실 책상에는 환한 불빛의 한국과 캄캄한 북한으로 대조되는 야간의 한반도 위성사진이 있었다면서 "한국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북한 수용소에 갇혀있지 않은 것이 많은 젊은 미국청년들이 1950년의 `잊혀진 전쟁'을 위해 싸웠기 때문이라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당시 서울의 고층빌딩 최상층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 "왜 한국의 젊은이들이 지구반대편 이라크로 가서 죽고 다쳐야 하느냐"는 한국 여기자의 질문을 받고 한국전에 참전했다 사망한 자신의 한 절친한 친구를 떠올리고는 "왜냐구요.

50여년전 미국이 그 나라의 젊은이들을 지구반대편 한국으로 보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라며 서울의 환한 야경과 고층빌딩 스카이라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고 썼다.

(워싱턴연합뉴스) 성기홍 특파원 sg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