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법 2년…한국IB의 현주소] (3) IB 도약 '디딤돌' 파생상품…몸집 커졌지만 체력은 아직 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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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파생상품 시장
선물ㆍ옵션 하루 57조 거래…리먼사태 충격 딛고 급성장
일부 증권사 저가 상품 발행, 경쟁 과열…수익성 악화 우려
세제 개선해 전략 다변화 유도를
선물ㆍ옵션 하루 57조 거래…리먼사태 충격 딛고 급성장
일부 증권사 저가 상품 발행, 경쟁 과열…수익성 악화 우려
세제 개선해 전략 다변화 유도를
"10년 전만 해도 유치원생 소릴 들었지만 이젠 어디 내놔도 밥값은 하는 성인이 됐습니다. "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급성장한 국내 파생상품 시장에 대한 한 외국계 증권사 임원의 평가다. 홍콩에서 주식워런트증권(ELW) 마케팅을 하는 그는 "해외상품을 따라가기 급급했던 국내 증권사들이 이제 자신만의 노하우로 승부하기 시작했다"며 "주가연계증권(ELS) 등 상품 면모에서는 홍콩의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을 90% 이상 따라잡은 것 같다"고 진단했다.
IB를 지향하는 금융회사들에 파생부문 경쟁력은 필수가 됐다. 선진 투자전략을 도입하고 수익을 다각화하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국내 증권사들도 만만찮은 성과를 보이고 있지만 질적인 측면에서 '레벨 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파생시장 플레이어 육성을 위한 시장제도의 뒷받침도 필요한 시점이다.
◆리먼 사태에도 파생시장 급성장
파생상품시장은 2007년 금융위기 발발로 큰 타격을 입었지만 갈 곳 잃은 시중자금이 몰리며 급속도로 회복됐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통화파생상품 키코(KIKO) 사태의 직격탄을 맞으며 한때 기업 대상 헤지상품이 씨가 마르기도 했지만 소매부문 수요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기대밖의 성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ELS다. 주가급락 여파로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안겨 2008년 말 발행이 거의 끊기다시피했지만 하락장에서도 나름대로 위험을 방어할 수 있고 수익구조가 명확하다는 장점이 부각돼 인기를 회복했다. 올해 ELS 발행 규모는 사상 최대인 3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원자재 환율 등을 활용한 파생결합증권(DLS)도 꾸준한 인기다. 또 장내파생시장에서는 세계 2위 규모로 급성장한 ELW가 증권사들의 새 수입원으로 부상했다.
ELS 발행 규모 1위인 대우증권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 영업이익에서 파생부문 비중이 13%를 차지했다. 키안 아부호세인 JP모건 애널리스트는 "경기회복에 힘입어 앞으로 2년간 파생상품이 채권을 대신해 글로벌 IB들의 새 수입원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파생시장은 아시아 최대 규모로 성장 중이다. 지난해 선물 · 옵션시장 일평균 거래대금은 57조원으로 31.8% 늘었다. 다양한 상품개발이 시장성장에 기여했다. 한 전문가는 "지난해 야간옵션,KOBA(조기종료)워런트,미니금선물 시장이 개설되는 등 수요에 부응하는 상품이 잇따라 등장한 점이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진수형 거래소 파생상품시장본부장은 "시장 플레이어들의 파생전략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판단으로 상품 다양화에 노력 중"이라며 "올해도 탄소배출권 연계상품과 신종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파생 경쟁력은 IB 도약의 디딤돌
급성장의 이면에는 경쟁 격화라는 부담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자본시장법으로 탄력을 받은 증권사들이 경쟁적으로 파생시장에 진입해 ELS 발행인가를 받은 증권사가 23곳에 달한다. 한 증권사 임원은 "해외와 달리 중소형사도 쉽게 장외파생 인가를 받을 수 있어 경쟁이 더 심하다"며 "일부 증권사는 인지도를 높이려고 저가의 사모 ELS도 발행하고 있어 수익성에 빨간 불이 켜졌다"고 우려했다.
상품 구색이 여전히 다양하지 못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중호 동양종금증권 연구원은 "종목 ELW의 경우 풋 종목이 30%에도 못 미쳐 헤지전략이나 포트폴리오 보험(기초자산을 매입하고 풋ELW를 사들이는 것) 등의 기본 전략도 수행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다른 파생상품의 발행이나 헤지전략에 활용되는 기본 상품인 주식선물 · 옵션시장이 부진한 점도 시급한 해결 과제다.
정자연 우리투자증권 에쿼티트레이딩 상무는 "자본시장 업그레이드를 위해 파생시장의 균형성장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스와프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한 탓에 대차비용이 비싸 헤지펀드가 주로 활용하는 롱-쇼트(long-short) 전략조차 수행하기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장외상품이란 이유로 스와프거래에 소득세를 부과하는 점도 하루빨리 헤지펀드 등으로 전략을 다변화하고 싶은 증권사들로선 아쉬운 부분이다.
'파생상품=위험'이란 인식 때문에 금융당국이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제도 마련에 너무 신중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차익거래시장이 거래세 도입으로 지난해 기관들이 이탈해 급속 위축되면서 결과적으로 11 · 11 옵션쇼크의 피해를 키운 것처럼 파생시장은 정부 정책에 민감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업계는 자율적인 안전장치 마련에 힘쓰고,정부는 규제 일변도에서 탈피해 시장의 자율적 힘을 키우는 방향으로 제도를 합리화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