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득 신임 한국노총 위원장(58)은 노조법 개정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 파기'와 '노동법 재개정'을 주장해 현장 조합원들의 지지를 받은 이 위원장은 2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복수노조와 타임오프 도입을 명시한 노조법은 총체적으로 부실해 전면 개정에 앞장설 것"이라며 앞으로의 운동 방향을 '투쟁 모드'로 이끌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노동법 개정 과정에서 정부와 트러블이 생기면 MB와 맞짱뜨겠다"고까지 했다. 이에 따라 오는 7월 도입하는 복수노조 허용이 제대로 시행될지가 노동현장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노조법 개정 '격랑 예고'

이 위원장은 2004~2007년 한국노총 위원장 시절 투쟁과 대화를 적절히 섞으며 고도의 협상 전략을 구사해 정부와 정치권,재계를 몰아붙인 베테랑 노동운동가다. 한국노총 내에서는 최고의 '승부사'이자 '투사'로 불린다. 보수세력과는 노선을 달리하고 대화와 투쟁을 병행하는 '사회개혁적 조합주의'를 주창해 투쟁에 소극적인 한국노총 내 개혁세력이자 '싸움꾼'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정치적 성향이 강하고 독선적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 위원장은 한국노총 위원장 시절인 2006년 9월 부산에서 열린 국제노동기구(ILO) 아시아 · 태평양지역 총회장을 박차고 나간 데 이어 단식농성이라는 최후의 카드로 정부를 압박해 '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시행 3년 유예'를 이끌어낸 바 있다. 이런 '투사' 이미지 때문인지 이번 위원장 선거에서도 2차 결선투표까지 갈 것이라던 당초의 예상을 뒤엎고 1차투표에서 과반수 지지를 넘기며 당선을 확정지었다. 이 위원장은 "3년 공백이 있는 나를 1차 투표에서 위원장으로 선택한 것은 현장에서 그만큼 복수노조와 타임오프제도에 대한 불만이 고조됐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현장에서는 타임오프제 실시로 전임자 수가 많이 줄어들자 노조법 개정을 주도한 정부와 이에 동조한 한국노총 현 집행부에 대한 반감이 강한 상황이다. "복수노조가 시행되면 한국노총은 망하고 강성 노조만 살아남을 것"(이 위원장)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항운노조를 비롯해 택시노련,자동차노련 등이 조합원 서명을 받으면서 복수노조에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등 일선 노동계에는 벌써부터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다.

이 위원장은 2008년 초 한나라당으로부터 전국구 4번 제의를 받았다가 보수세력의 장석춘 현 위원장에게 한국노총 사령탑 자리를 넘긴 뒤 전국구 후보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이 위원장이 한나라당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는 기억이다. 이 때문에 13년 만에 어렵게 노조법을 개정해 복수노조와 타임오프 도입에 성공한 정부와 한나라당,청와대는 향후 한국노총이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위원장이 그때의 수모를 보복하는 차원에서 투쟁을 불사할 경우 MB정부의 치적으로 평가받는 노조법 개정이 격랑에 휘몰릴 수도 있다. 김대중,노무현 등 좌파정권 때 노동계의 반대에 밀려 잇따라 실패한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MB정부 들어 어렵게 도입됐다.

◆복수노조 또 유예되나

노조법 개정 주무부서인 고용노동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복수노조는 법에 명시된 대로 오는 7월부터 시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조재정 고용부 노사정책실장은 "7월부터 허용키로 법에 명시된 복수노조 제도를 한국노총 위원장 한사람이 바뀌었다고 바꿀 수는 없지 않느냐"며 "복수노조는 반드시 예정대로 시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박사도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정책연대를 파기해 복수노조와 타임오프를 흔들겠다고 말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정책연대를 파기하면 법 개정 과정에서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도움을 얻기가 쉽지 않아 오히려 곤란에 빠질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노동계와 재계에서는 이와 상반된 시각이 나오고 있다. MB정권이 고용창출을 비롯해 노사문화 개선,단시간 근로,비정규직 보호,고용시장 유연성,4대보험 제도 개선 등과 관련된 정책들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노동계의 협조는 절대적이다. 따라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 가운데 적어도 한 개를 사회적 대화 파트너로 선택해야 하는데 투쟁 중심의 민주노총은 대화 대상에서 제외하고 한국노총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타임오프제도에 대해서도 한국노총 내 불만이 많다. 이 위원장은 "현장에선 타임오프에 대한 불만이 무척 많다"며 "상급단체 파견 전임자 임금을 2년간 준다고 했는데 매달 경영자단체로부터 임금을 구걸하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노동운동이 어떻게 독립성을 갖고 자주성을 찾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 제도는 노동운동의 미래와 희망을 사라지게 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노조법에 대한 노동계의 불만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이 위원장이 이끄는 한국노총이 노조법 개정을 요구하며 길거리 투쟁에 나설 경우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비롯한 정치권과 현 정부가 모른척 할 수만은 없다는 분석이다. 이 위원장이 조합원들에게 약속했듯이 한국노총의 투쟁이 현실화할 경우 이미 시행된 타임오프와 곧 시행될 복수노조는 시행 자체는 물건너가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손질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노총이 길거리 투쟁을 강행할 만큼 동력을 끌어모으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많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


◆ 이용득은 누구…총파업 주도 두 차례 구속

경북 안동 출신으로 덕수상고(현 덕수고)와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상업은행(현 우리은행)에 들어가 1986년 노조위원장을 맡으면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1997년 노동법 개정 반대투쟁 때는 한국노총 조직국장으로 총파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2000년 7월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재임 중 정부의 금융권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두 차례 구속되기도 했다. 2004년 5월 이남순 전 위원장의 사퇴로 공석이 된 한국노총 위원장 보궐선거에 단독으로 입후보해 당선됐다.

이어 2005년 재선에 성공해 3년간 한국노총 위원장을 지낸 뒤 우리은행 신탁사업단 퇴직연금부문 조사역으로 일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