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배임ㆍ횡령 등 혐의로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을 21일 발부함으로써 '태광 비자금 의혹'을 파헤치는 검찰 수사가 막바지 국면에서 일단 탄력을 받게 됐다.

이 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는 한화그룹 비자금 수사에서 핵심 연루자의 구속영장이 수차례 기각되자 '절치부심'의 자세로 이 회장의 구속수사를 위해 영장 청구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법원은 이날 "무자료 거래ㆍ허위 회계 처리를 통한 업무상 횡령 혐의와 조세 포탈 혐의에 관해 증거인멸의 우려가 인정된다"며 이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검찰의 손을 들어 줬다.

이 회장 구속에 성공함으로써 검찰은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진 이번 수사에서 일단 '체면'을 세웠다.

또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 회장의 신병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정관계 로비의혹 등 그동안 제대로 손을 대지 못한 의혹규명을 위해 강도 높은 보강 수사를 펼칠 수 있게 됐다.

검찰은 압수수색 등 공개수사를 본격화한 지 약 3개월 만에 이 회장의 3천억원대의 비자금 조성과 약 806억원의 횡령및 배임 혐의를 밝혀내고 구속영장까지 청구했으나, 방송 및 금융 담당 공직자와 정치인 등에 대한 이 회장 측의 뇌물공여 혐의는 규명하지 못했다.

이런 점 때문에 그동안 태광 측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제기했던 시민사회단체 등에서는 이번 수사가 정경유착 의혹을 전혀 건드리지 못하고 '용두사미' 양상으로 흐른다며 검찰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또 앞서 한화그룹 비자금 사건에서 홍동옥 전 CFO(재무총책임자)와 경영기획실 상무, 삼일회계법인 간부 등에 대한 구속영장이 잇따라 기각되자 검찰은 '법원의 영장 발부 기준조차 맞출 수 있겠느냐'는 냉소에까지 시달려야 했다.

이렇듯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검찰은 '모든 것을 건다'는 각오로 최근까지 밤낮을 잊은 채 이 회장의 범죄사실 입증에 주력해왔다.

남기춘 서부지검장은 영장 청구 직전까지 영장에 적시된 이 회장의 피의사실 등을 직접 일일이 체크하는 등 검찰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 막판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 회장 구속에 성공한 검찰은 자신감을 되찾은 상태에서 이 회장 구속기소를 위한 공소장을 탄탄하게 작성하는 데 매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이 일단 증거인멸이나 태광그룹 내부의 말맞추기 개연성을 차단한 채 이 회장을 상대로 비자금의 용처를 강도높게 추궁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수사는 이제부터 정관계 로비의혹을 파헤치며 종착역을 향해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유선방송 계열사 티브로드의 문모 전 팀장과 태광산업 사외이사를 역임한 전성철 변호사가 민사ㆍ행정 소송을 벌이며 태광 측의 로비의혹을 제기하고 있어 검찰이 수사 단서를 확보하는 데도 유리한 상황이다.

검찰 관계자는 향후 수사방향과 관련해선 "자세한 사항을 언급할 수는 없다"며 말을 아꼈지만 "진실을 밝히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강한 수사의지 만큼은 감추지 않았다.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t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