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나 공장기계와 같은 동산(動産)의 이중매매는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은 져도 형법상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는 부동산이 아닌 동산의 이중매매에 관한 처벌 기준을 확립한 첫 대법원 판례여서 주목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20일 매매계약을 체결해 중도금까지 받은 인쇄기를 제삼자에게 다시 팔아넘긴 혐의(배임)로 기소된 박모(48)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대법관 7(무죄)대 5(유죄) 의견으로 확정했다.

재판부는 "매매계약의 당사자가 계약상 채무를 이행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자신의 사무에 해당할 뿐 상대방의 사무로 볼 수 없다"며 "동산 매도인은 매수인의 재산 보전이나 관리에 협력할 의무가 없으므로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동산 매도인이 매매목적물을 이중으로 매도하는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지는 데 그칠 뿐 형법상 배임죄로 처벌받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안대희ㆍ차한성ㆍ양창수ㆍ신영철ㆍ민일영 대법관은 "동산 매도인은 부동산 매도인이 등기협력 의무를 부담하는 것과 같이 물건의 인도를 통해 매수인의 소유권 취득에 협력할 의무를 부담해 배임죄의 주체가 된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박씨는 2005년 자신 소유의 인쇄기를 피해자 최모씨에게 1억3천500만원에 매도하고 중도금 명목으로 4천300여만원어치의 물품을 지급받은 상태에서 8천400만원의 빚을 지고있던 류모씨에게 채무 변제를 조건으로 인쇄기를 양도한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민사분쟁에서 배임죄의 성립요건을 엄격히 해석해 형벌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율적인 이해관계 조정이 이뤄지게 하고, 단순한 채무불이행과 배임행위를 구분하는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abullapia@yna.co.kr